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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Sep 05. 2023

11. 양파링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의 명소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근처에 단양 팔경이니 청풍명월이니 하는 아름다운 관광지가 넘쳐 나지만 제천이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관광지는 의림지가 아닐까? 


나는 제천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매년 소풍 장소는 어김없이 의림지였다. 상상해보라. 교복을 입은 수백 명의 학생과 선생님이 한 줄로 늘어서서 잔잔하게 펼쳐진 논길을 가로지르며 의림지로 향하던 모습을. 때는 90년대였고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1시간 넘게 걸어서 의림지 풀밭에 도착하면 다리가 아팠다. 우리는 기진맥진한 채 아무데나 풀썩 주저앉아 김밥을 먹었다. 아침에도 잔뜩 먹고 왔지만, 엄마가 싸준 김밥은 여전히 맛있었다.  

 교회에서 종종 야유회를 가던 장소 역시 의림지였다. 봉고차를 타면 금방 도착했다. 작은 교회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함께 타고 갔다. 간단하게 예배를 드린 후 점심을 먹었다. 교인들이 너른 풀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먹는 동안 몇몇 선생님은 나무 둥치나 바위 밑, 풀밭 사이에 작게 접은 종이를 숨겼다(미리 와서 이미 작업을 끝내 놓은 적도 있었다). 


야유회의 마지막을 장식할 보물찾기 게임을 위해서였다. 점심을 먹고 나면 게임 시간이었다. 그 중 빠지지 않고 했던 게임이 과자 따먹기였다. 어른들은 주변을 살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기다란 나뭇가지 두 개를 찾았다. 그리고 각각의 나뭇가지에 일정한 간격으로 실을 감아 늘어뜨린 후 과자를 하나씩 실로 묶었다. 이때 등장하는 과자가 양파링이었다. 


 얇은 테를 가진, 중앙에 구멍이 뻥 뚫린 양파링은 실에 매달아 놓기 위해 태어난 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른 두 명이 앞으로 나가 막대기를 하나씩 잡았고, 거기서부터 50미터 떨어진 곳이 출발점이었다. 남은 사람들은 두 팀으로 나눠 한 줄로 늘어섰다. 출발 구호에 맞춰 한명씩 막대기를 향하여 뛰어갔다. 


규칙은 뒷짐을 지고 입만 사용하여 과자를 따먹는 방식이었다. 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양파링 하나를 입속에 넣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과자 따먹기를 성공하면 다시 출발선으로 뛰어왔고, 다음 주자가 양파링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막대기에 달려 있던 양파링을 전부를 먼저 없애는 팀이 우승이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게임이 끝났다. 게임이 끝나도 봉지에 든 양파링은 여전히 많았다. 양파링은 원래 양으로 승부하는 과자였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었기에 양파링은 각종 모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어른들이 남은 양파링을 맛있게 먹는 동안, 양파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양파링을 조심조심 입으로 깨물어 틈새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틈새끼리 엮어 양파링 목걸이도 만들고, 양파링 팔찌도 만들며 놀았다. 그날은 야유회였고 과자는 넘치도록 풍족했다. 우리 마음도 양파링 개수만큼 여유로웠다. 


1983년 농심에서 만든 양파링은 구멍이 뻥 뚫린 링 모양의 과자다. ‘사랑과 우정의 상징 양파로 만든 양파링~’ 씨엠송을 좋아했다. 양파링이 어떤 이유로 사랑과 우정의 상징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방에서는 양파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건 사실이다. 양파는 생으로 먹어도 달콤하고(단짝은 짜짱면), 볶아 먹어도 달콤하고(단짝은 어묵), 태워 먹어도 달콤하다(단짝은 버터). 어떤 음식에 넣어줘도 혼자 튀지 않고 은은한 멋을 풍기는 양파, 양파링에는 양파가 4.8% 들어있다. 


어렸을 땐 양파 냄새가 난다고 양파링을 싫어했고, 어른이 되서는 양파링 대신 양파를 먹는다. 내게 양파링은 이래저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양파링이 맥주 안주로 잘 어울린다고 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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