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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l 07. 2020

22. 둘이서 라면 하나 - 진짜장

진짜장


잉? 면이 진짬뽕이랑 똑같네. 난 얇은 면이 더 좋은데. 진짜장 라면 봉지를 뜯었더니 면이 두껍다. 왠지 만족스러울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반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우선 끓여보자. 진짜장은 오뚜기에서 2015년에 출시한 프리미엄 짜장라면 중 하나이다. 라면 표지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중앙에 커다란 짜장면 한 그릇이 놓여 있는 사진 한 장이 전부이다. 우측 중간에 ‘진한불맛! 짜장소스!’라고 적혀 있다. 진한 불맛은 맛보면 알게 될 테고 짜장소스라는 단어는 굳이 왜 적어 놓았을까? 보통 짜장면은 짜장 소스가 올라가야 짜장면이라 불리는 거 아닌가요? 저만 모르는 다른 뭔가가 있는 건가요?


 건더기와 면을 넣고 라면을 끓인다. 건더기 안에는 귀여운 달걀 후라이 모양의 지단이 들어 있다. 4분간 면을 익힌 후 물을 알맞게 따라버리고 소스를 넣는다. 프리미엄 라면답게 액상 소스다. 소스를 정성껏 냄비에 짜 넣은 후 다시 불을 켜고 1분간 소스와 면을 섞는다. 면을 완전히 익힌 후 소스를 넣어 비벼먹는 것보다 소스를 넣고 불에 한 번 더 볶아주는 게 맛이 좋다. 소스가 살짝 졸아들면서 면에 맛이 스며드니까. 


 그런데 노란 달걀 후라이 모양 지단이 다 어디로 갔지? 살펴보니 검은 짜장 소스에 묻어 몽땅 까맣게 되어 버렸다. 아니 이럴 거면 굳이 앙증맞은 달걀 후라이 모양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텐데. 우선 한번 먹어봅시다. 호로록. 한 입 먹어본다. 음. 우선 고온에 볶은 진한 불맛은 나지 않는다. 그냥 살짝 불맛 정도? 짜장소스는 진하나 진한만큼 짜다. 얇은 짜파게티 면에 익숙해져서인지 굵은 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불만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순간 <오무라이스 잼잼> 만화가 떠오른다. 조경규 작가는 7권에서 인스턴트 식품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오랜 시간 연구로 완성되었을 이런 식품들은 인스턴트 라는 네 글자로 요약되는 순간 그 가치가 수직 강하하곤 한다.’ 맞는 말이다. 인스턴트 라면은 공산품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연구원들은 동일한 맛을 유지하고 품질 향상을 위해 몇 십 년간 연구해 왔다. 그 결과물이 지금 내 앞에 놓인 라면 한 그릇이다. 


 아빠는 중학생 때 처음 라면을 먹어 봤는데 그 맛이 ‘환상적’이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라면이 먹고 싶었는데도 집이 가난하여 자주 사먹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 역시 라면 한 봉지를 사면 거기에 미역과 소면을 잔뜩 넣어 친오빠 두 명과 함께 나눠 먹었다고 하니 1960년대만 해도 라면 한 그릇은 정말 정말 귀한 음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현재 나는 각종 라면을 수십 봉지 사서 내키는 대로 골라 먹으며 맛있네 맛없네 품평이나 하고 있다. 심지어 인스턴트 식품은 되도록 절제하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먹으려 노력하니 부모님과 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세계를 살아온 것이다.


 갑자기 인스턴트 라면에 대한 고마움이 솟아난다. 인스턴트(instant)는 즉각적인, 순간의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5분 만에 한 끼 식사 차리는 걸 가능하게 하는 라면. 나트륨 비율이 과하긴 하지만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도 적절하게 들어 있는 라면. 몸이 피곤하거나 바쁠 때 최소한의 노동만으로 먹을 수 있는 라면. 무게가 가벼워 어디를 가든 쉽게 챙겨갈 수 있는 라면. 먹거리의 풍요 속에 살다 보니 라면의 귀함을 깜박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진짜장을 먹어본다. 호로록. 뭔가 아쉽긴 하나 맛은 있다. 아쉬운 부분이 뭔지 곰곰이 생각하다 집에 있는 올리브 오일을 휘리릭 넣고 비벼본다. 다시 한입. 이거였군. 기름이 들어가니 맛이 살아난다. 그래. 기름이 듬뿍 들어가야 짜장면이지. 부모님의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건더기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휴. 라면 국물이 없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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