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댁 냉장고를 열어보니 크리스피 도넛이 잔뜩 들어있다. 부모님은 단 음식을 싫어하는데 웬일이래. 아빠에게 도넛 맛있냐고 물으니 손사래를 치며 남은 거 다 가져가라고 하신다.
“아니 그럼 왜 산거야?”
“사진에는 도넛처럼 생겼던데. 꽈배기 같은 옛날 도넛인 줄 알고 시켰지.”
“그러니까 인터넷으로 물건 사기 전에 나한테 먼저 물어보라고 했잖아.”
웃음과 잔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냉장고 안에 있는 두부를 살펴보고 엄마에게 소리치기도 한다.
“엄마, 이리 와봐. 여기 봐봐. GMO라고 적혀 있지? 국산 콩 적힌 걸로 사라고 했잖아.”
“두부는 다 국산 콩으로 만든 건 줄 알았지. 넌 그 작은 글씨가 보이니?”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다보면 종종 참견을 하게 된다. 부모님 세대보다 우리 세대 삶의 방식이 더 효율적이고, 편리하고,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오아시스와 마켓컬리에 들어가 좋은 상품을 골라준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하면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해 준다.
지인과 약속이 있다고 하면 목적지에 가장 쉽게 도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찾아준다. 인터넷으로 병원을 예약하여 함께 간다. 할인 의류 매장에서 품질 좋은 옷을 골라주기도 한다. 부모님은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거나, 물건을 사거나, 어딘가를 가려 할 때 내게 묻는 경우가 잦아진다.
부모님을 모시고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아울렛 구경을 갔다. 아울렛에 처음 온 부모는 규모가 엄청 크다고 놀라워했다. 동선이 사방으로 연결되고, 실내와 실외 구분이 모호한 장소들을 둘러보다 엄마가 말했다.
“너 아니면 길 잃어버리겠다. 화장실도 못 찾겠네.”
엄마는 구경하는 동안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부모님이 나를 의지하는 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남편이 퇴직하면 여러 도시를 떠돌며 살려는 계획이 있다. 지금처럼 부모님과 매주 만나기는 어려울 거다. 그때는 누가 연로해진 부모님 집을 청소해 주나? 누가 부모님 간식과 과일을 챙겨 드리나? 누가 부모님과 외식을 하나? 오지도 않은 미래를 혼자 상상하며 괜한 걱정을 할 때가 있다. 부모님이 조금씩 기대어 올수록, 내 역할이 조금씩 커져갈수록 책임감과 부담감이 동시에 생겨난다.
내가 없으면 부모는 누가 돌보나 하는 오만한 마음을 깨뜨려준 영화가 한 편 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라는 영화이다. 제르맹 할아버지는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자식들은 잘 컸고, 무용수인 아내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공연을 앞 둔 어느 날 급작스럽게 아내가 세상을 떠난다.
제르맹은 충격에 빠진다. 제르맹은 무용단장을 찾아간다. 누구든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상대방이 시작한 일을 남은 사람이 마무리하기로 오래전 아내와 약속했다고 말하며, 아내 대신 무대에 서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재르맹은 공연단의 허락을 받고 연습을 시작한다.
현대무용이다. 반면 자식들은 아버지까지 잃을까 두려워 시간표를 짜서 아버지 일정 관리에 열심이다. 아버지는 자식들 몰래 연습을 계속한다. 손짓 발짓으로 춤인지 뭔지 모를 동작을 연습하며 재르맹은 조금씩 기쁨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자식들에게 벗어나고 싶어한다(뜨끔). 영화를 보며 부모님이 나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잊고 있었다.
아주 가끔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드리지 못한 미안함이 들기도 한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유년부 선생님을 하고 있는데, 새 학기가 시작되면 1학년 아이들이 묻는다.
“선생님은 아이가 몇 명이에요?”
“선생님은 자식이 없어. 네가 선생님 아이 할래?”
보통 이렇게 대화가 마무리되는데 어느 날 한 아이가 되물었다.
“그럼 남편이랑 왜 결혼했어요?”
아이들 시선에서는 자기 엄마 아빠 또래 나이인 내가, 자기들은 그렇게 사랑해 주면서도, 아이 없이 살아가는 게 이상해 보일만도 하다. 아이가 없다보니 아이를 키우는 부부에 비해 육체적, 정신적인 여유가 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부모님께 관심을 가지고 힘이 되려고 노력한다. 자주 찾아뵙고, 함께 여행을 다니고, 일상의 불편한 부분을 해결해 드린다. 동생 가족들은 아이들 키우느라 힘들고 바쁜 걸 알기에 함께 동참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나도 평생 착한 딸은 아니었다. 20대 때는 부모님께 유학 가고 싶다고 소리를 질렀다. 돈 없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거친 말을 내뱉기도 했다. 우리도 가난한데 남한테 그만 좀 퍼주라고 화도 많이 냈다. 그때마다 부모는 철없는 딸의 비난을 묵묵히 들어 주셨다. 지금은 그들이 단독으로 지셨던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려 한다는 게 다를 뿐이다.
효도는 누가 떠민다고 해서 잘 할 수 없다. 늙어가는 부모를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든다. 지금 내 나이인 부모의 젊은 모습을 떠올려 본다. 부모님은 그 당시 제천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며 어렵게 살았다. 예배당과 사택은 붙어 있었고 교회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가끔 거지들이 구걸을 하러 왔다. 가려면 큰 교회나 가지 눈치도 없이 작은 교회는 왜 찾아왔던 걸까? 밥 달라면 밥을 주고 돈 달라면 천 원이라도 쥐어 주던 엄마가 한번은 미안해하며 말했다.
“저희가 지금 쌀이 다 떨어져 집에 콩 볶은 것 밖에 없어요. 죄송한데 이를 어쩌죠?”
거지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혀를 차며 대답했다.
“내가 가진 게 있으면 좀 도와주고 싶네요.”
부모님은 어린 나와 동생을 키울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배를 곯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우리들만 봐도 배가 불렀다고. 나 때문에 부모님이 포기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노인이 된 부모님은 천방지축인 나를 여전히 지지한다. 철없을 때는 그 사랑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받았다. 마흔이 되어 보니 갚을 길이 막막하다. 사람은 자신이 준 건 오래 기억하고 받은 건 쉽게 잊는다.
그렇다고 부모가 자식을 힘들게 키웠으니 자식이 부모를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는 뜻은 아니다. 효도는 그런 식의 교환 관계가 아니다. <케어>에서 아서 클라인먼은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에서,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 지금 도움을 청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도움을 준다고. 한 발 더 나아가 그 사람이 돌봄을 필요로 하는 한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이 일을 할 것이라 결심한다고.
친척과 친구들은 나를 효녀라 부른다. 그들이 모르는 게 있다. 내가 부모를 챙기는 것보다 부모님께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부분이 훨씬 크다는 걸 말이다. 부모님의 격려와 훈계가 있기에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난다. 부모님이 맛있게 식사 하시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 예전의 부모님이 나를 보며 그랬던 것처럼.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서로 정서적 육체적으로 의존하고, 싸우고, 지지하고, 말벗이 되어 살아가는 것,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