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제 잘 잤어?”
“아니. 잠을 설쳤어.”
“왜?”
“오늘 나들이 간다고 생각하니 설레서 잠이 안 오더라.”
마흔이 다된 딸과 일흔이 다된 엄마 아빠가 손을 잡고 놀이동산에 갔다. 처음 방문한 곳은 용인 민속촌. 민속마을 구경을 갔는데 규모가 작은 놀이동산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놀이 기구 타는 비용이 포함된 자유이용권을 끊었다. 놀이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는 순환 열차를 탔다. 커다란 컵 안에 담겨 뱅글뱅글 돌아가는 매직 티 컵도 탔다.
평소라면 절대 타지 않을 바이킹도 탔다. 민속촌 바이킹은 크기가 작았기에 덜 무서울 것 같았고 부모님이 같이 타자고 졸라 어쩔 수 없었다(작아도 바이킹은 바이킹이었다). 나는 솔직히 부모님이 그렇게 신나 하실 줄 몰랐다. 엄마는 높은 곳까지 천천히 올라갔다 단번에 떨어지는 드롭앤트위스트도 타고 싶어 했다.
“엄마. 저거 타면 심장이 공중에 머물러 있다 내려오기까지 한참 걸려.
매우 위험한 기구라 우리처럼 몸 약한 사람은 절대 타면 안 돼. 여기 경고문 봐봐. 노약자는 주의하시오 라고 써 있지?”
KB 금융기업에서 “하늘같은 든든함, 아버지”라는 제목의 광고를 제작한 적이 있다. 40개월 미만 자녀를 둔 젊은 아버지를 대상으로 한, 몰래 카메라 형식의 영상이었다. 아빠들은 책상에 앉아 ‘아동 학습 발달에 미치는 아빠의 역할’이라는 명목으로 설문조사를 작성한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지 등의 질문에 아빠들은 막힘없이 질문지를 채워나간다.
다음으로 아빠들에게 주어진 질문지는 대상만 바뀐 동일한 문항의 설문지이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지, 최근에 아버지를 안아본 적이 있는지, 아버지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지 등의 질문에 아빠들은 답을 적지 못한 채 고민에 빠지고 곧 눈시울을 붉힌다.
부모님이 아이처럼 재밌어 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 영상이 떠올랐다. 반성했다. 놀이동산은 어린이만 좋아하는 게 아니구나. 한 달 뒤 부모님을 모시고 에버랜드에 갔다. 부모님과 함께 오는 건 30년 만에 처음이다. 튤립축제기간이었는데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꽃 냄새가 나네. 나는 냄새를 잘 못 맡는데, 꽃들이 얼마나 많으면 꽃 냄새가 다 나니. 세상에. 꽃 예쁜 것 좀 봐라.”
엄마는 꽃밭을 한참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에버랜드 바이킹은 규모가 남달랐다. 이번에는 절대 타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지나가는 말로 바이킹 타실래요? 했더니 아빠가 말했다.
“저번에 바이킹 탈 때는 재밌었는데 온몸에 힘을 주고 타서 그런지 집에 와서 며칠 고생했어.”
우리는 나란히 야외 의자에 앉았다. 커다란 바이킹이 허공을 가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부모님은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번쩍 드는 사람들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퍼레이드도 구경했다. 외국 공연단이 화려한 옷을 입고 군무를 하며 지나갔다.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쟤네 진짜 사람이니? 얼굴이 왜 이리 작아? 너무 예쁘다. 사람 맞아?”
간식도 사먹었다. 엄마는 알록달록 색도 모양도 예쁜 마카롱을 가리키며 저건 뭐냐고 물었다.
“프랑스 쿠키인데, 달걀흰자를 거품내서 구운 다음에 잼을 발라 만든 거야. 엄청 폭신폭신하고 달콤해.”
마카롱을 맛본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맛있네. 근데 이 작은 게 얼마라고?”
아빠랑 햄버거도 먹었다. 아빠는 패스트푸드 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안에 들어간 고기가 싫다고 하길래 새우로 만든 패티도 있다고 하니 깜짝 놀라셨다.
“새우 버거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먹어볼걸. 감자튀김도 맛있네.”
나이가 들수록 생활반경이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낯선 곳보다는 익숙한 장소를 찾게 되고 새로운 맛보다는 평소 먹던 음식을 고르게 된다. 부모님은 자식들과 가까이 살려고 아무 연고도 없는 수원으로 이사를 오셨다. 나는 부모님과 편안한 동네 친구가 되고 싶다. 가끔 부모님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함께 가고, 맛보지 못한 음식을 함께 먹으며 내게는 익숙한 것들을 처음처럼 바라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