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네가 또 갖다 버렸지?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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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니멀리스트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가지고 있고, 각각의 물건은 충분하게 쓰임 받는다. 우리 집 서랍, 찬장, 창고 등 구석구석에 어떤 물건이 들어 있는지 99% 알고 있다. 만약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해도 남편은 짐을 정리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내 옷만 수거함에 넣으면 된다. 우리 집은 항상 정리된 상태니까.


반면 엄마는 맥시멀리스트다. 집안 구석구석 가구와 물건으로 가득하다. 오래되어 낡은 옷도, 작아진 옷도, 지인이 입다가 엄마에게 준 옷도 절대 버리지 못한다. 옷장을 정리하려 하다가도 언젠간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며 다시 제자리에 넣는다. 생필품도 마찬가지. 휴지, 치약, 비누, 쌀 등도 잔뜩 구입한다.


“엄마, 휴지를 왜 이렇게 많이 사? 집이 창고야? 하루면 배송되는 걸 왜 미리 쌓아 놓는거야?”

“너는 휴지가 하나밖에 안 남으면 불안하지도 않니? 엄마는 넉넉하게 있어야 마음이 안 불편해. 그냥 냅둬라.”


오랜 세월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왔기에 생필품이 부족하면 불안한 마음이 든다는 엄마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자질구레한 물건은 서랍 속에 보관한다. 부모님은 책상과 선반 위에 쪼르륵 늘어놓는다. 자주 쓰는 물건이 눈에 보이는 자리에 있어야 편하다고. 일리 있는 말이지만 궁금한 건 정말로 그 물건을 자주 쓰냐는 거다.


부모님이 수원으로 이사 왔을 때 정리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불필요한 짐들을 엄청 버렸다.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우거나 다른 방에 있을 때 잽싸게 물건을 문 밖에 꺼내 놓거나 쓰레기봉투에 담아 분리수거장으로 직행했다. 아빠가 적극적으로 도와줘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버려진 대부분의 물건은 엄마에게 필요 없거나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라 범행을 감출 수 있었다. 범행은 반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었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가끔 쓰는 물건을 몇 개 버리는 바람에 발각되었다. 엄마는 속상해하며 말했다.


“하림아, 엄마는 그 물건을 버릴 마음에 준비가 안됐는데 네가 버려서 스트레스 받아. 다 쓸데가 있는데 왜 엄마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버리니?”


나는 집이 사람 사는 곳이지 물건 사는 곳이냐며 성질을 냈다. 한편으로는 죄송했다. 부모 삶과 내 삶의 방식이 다른데 내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고 고치려 했다. 엄마 생각과는 상관없이 부모님 집이 내 집처럼 텅 비어있고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기를 원했던 거다.

물건을 버리면서 그동안 내가 엄마에게 주었던 물건도 제법 있음을 깨달았다. 스카프, 그릇, 가방, 밀폐용기, 옷, 장식품 등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엄마 쓰라고 준 것이었다. 엄마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었다. 나야말로 왜 버리지 않고 엄마 집에 갖다 놓았던가?


나는 더 이상 부모님 물건을 몰래 갖다 버리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버리기도 했다. 엄마는 짐이 줄어들어 예전보다 훨씬 쾌적하고 넓어진 집에서 살게 되면서 내 삶의 방식을 일부 수용하였다. 엄마도 이제는 미니멀리스트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뭐든 버리는 사람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나를 따라다닌다. 엄마 스스로가 깜박하여 다른 장소에 보관해 놓은 물건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른 김일 때도 있고 냄비일 때도 있다. 비타민, 로션, 가방일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다짜고짜 내게 전화부터 건다.


“하림아, 그거 네가 갖다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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