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기꾼도 있다

by 유자와 모과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떤 사모님이 엄청 좋은 정수기를 소개해 주셨어. 강연 듣고 왔는데 여기 제품 만드신 회장님이 굉장한 분이시네.”

“뜬금없이 무슨 정수기야. 집에 정수기도 있고 매달 게르마늄 생수도 사먹으면서. 또 뭘 산건데?”


그렇게 해서 나는 000에 알게 되었다. 부모님은 다단계 제품이라고 했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것 같았다. 나는 한때 다단계(네트워크) 제품이라면 무조건 싫어했다. 그러다 건강식품을 드시고 부모님 건강이 기적적으로 나아진 걸 목격한 후 마음을 살짝 바꿨다. 다단계 회사마다 주요 상품으로 내세우는 품목이 하나씩 있고, 그런 제품은 대부분 효과가 뛰어나다.


한국에는 약 130개 업체가 다단계 판매업으로 등록되어 있다. 부모님 돈이니 내가 간섭할 일도 아니고 해서 그냥 물건을 좀 비싸게 사셨나보다 하고 넘기려 했다. 그런데 아빠가 말하길 정수기가 지금 주문이 밀려 한 달 뒤에 받기로 했단다. 카드로 이미 100만원이 넘는 돈을 결제 했는데 제품은 한 달 뒤에 준다고? 수상한걸. 아빠도 회사가 판매업 등록을 하지 않아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회사 측에서는 등록을 하면 국가에 33% 세금을 떼는데 이 세금을 회원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일부로 등록하지 않는 거라고 홍보를 한단다. 뭔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하자 아빠는 정수기를 만든 사람이 그 회사 회장이 맞는지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 증거를 찾아냈다. 발명가는 따로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그 회사 리더들이 소통하는 밴드를 발견했다. 공지사항을 몇 개 읽어보니 SNS 모임을 텔레그램 방에서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을 안 쓰고 굳이 텔레그램 앱을 설치해서 거기서 소통한다고? 대화기록 저장이 안 되는, 고도의 정보 보안을 요구하는 텔레그램을 왜 사용하지? 정상적인 회사라면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정보를 주고 받을텐데.

더 충격적인 건 수당을 코인으로 준다는 거다. 너희들 정체가 뭐냐? 코인이나 텔레그램방과 관련된 건 거의 사기라고 보면 된다. 경찰이 추적하지 못하도록 텔레그램과 코인으로 거래하려는 거겠지. 코인마저 막판이 되면 지급을 미루다 도망가면 끝.


그제야 부모님은 그 회사가 불법이며 정수기를 받지 못할 거라는 깨달음을 얻으셨다. 부모님이 정수기를 구입했던 이유는 회장의 강연 때문이었다. 회사 회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으며, 금식 기도를 하도 많이 해 이가 몽땅 빠졌다고 했다. 강의 중간에 찬양까지 했다니 말 다했지. 전 재산을 한국에 기부할 거라고도 했단다.


부모님은 생각했다. 평생을 인류를 위해 헌신한 분이 발명한 물건이니 얼마나 좋을까. 신앙적으로 순수한 부모님은 누군가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대놓고 거짓말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원래 사람을 잘 믿었다. 빤히 손해를 보면서도 서로 믿고 사는 거라고, 넌 왜 그렇게 사람을 못 믿느냐고 되묻는 부모가 얼마나 얄미웠던가. 이번이야말로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할 절호의 기회였다.


부모님이 당한 건 폰지 사기다. 폰지 사기의 원리는 이렇다. 사업 초반에는 회사에서 수십 명, 수백 명에게 수당을 지급한다. 제품도 정확하게 제공한다. 한 명 소개할 때마다 통장에 수당이 찍히는 걸 보면 사람들은 생각한다. 정말 이 사업은 대박이구나. 회사 말대로 돈이 들어오는 걸 본 소수의 사람은 이제 열정적인 사업가가 된다. 제가 증인이에요.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니까요. 이 제품을 썼다니 병이 싹 나았어요. 놀라운 제품이라니까요.


사람들은 소수의 간증을 듣고 하나 둘 회원 가입을 하기 시작한다. 회사는 이미 가입한 회원 돈을 빼어 그 다음 회원에게 주면 된다. 아랫돌 빼어 윗돌에 얹는 방식으로. 돈 액수는 점점 커져가고 물레방아는 신나게 돌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리더들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지연되고 회사 측에서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며칠 후, 펑! 눈 떠보면 아무도 없다. 어라? 다들 어디 갔지? 내 정수기는?


부모님을 실컷 비난한 후 흡족한 마음으로 서울에 있는 회사를 방문했다. 부모님도 대동했다. 회사는 건물 1층과 2층에 대충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아 급조한 모습이었다. 밖에는 건장한 남자 몇 명이 이유 없이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만약의 경우를 위해 핸드폰 녹음기를 몰래 켠 후 당당한 목소리로 결제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안된다고 하면 경찰서를 가려 했는데 다행히 환불 처리를 해줬다. 서울 온 김에 남산을 오르기로 했다. 개나리가 활짝 피어난 봄날이었다.


“와. 얼떨결에 다 같이 남산에 왔네. 날이 참 좋아요. 아빠.”


그러자 아빠가 대답했다.


“옛날에 아버지 거지와 아들 거지가 살았대. 길을 걷다 어느 집에 불이 나 활활 타고 있는 걸 보고 아들이 말했대. 아버지, 우리는 집이 없어 불날 일도 없네요.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했대. 다 내 덕 인줄 알거라.”


나는 아빠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맞아. 아빠 덕에 남산에도 왔네. 우리 돈까스나 먹을까요?”

이전 22화22. 네가 또 갖다 버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