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떤 사모님이 엄청 좋은 정수기를 소개해 주셨어. 강연 듣고 왔는데 여기 제품 만드신 회장님이 굉장한 분이시네.”
“뜬금없이 무슨 정수기야. 집에 정수기도 있고 매달 게르마늄 생수도 사먹으면서. 또 뭘 산건데?”
그렇게 해서 나는 000에 알게 되었다. 부모님은 다단계 제품이라고 했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그런 것 같았다. 나는 한때 다단계(네트워크) 제품이라면 무조건 싫어했다. 그러다 건강식품을 드시고 부모님 건강이 기적적으로 나아진 걸 목격한 후 마음을 살짝 바꿨다. 다단계 회사마다 주요 상품으로 내세우는 품목이 하나씩 있고, 그런 제품은 대부분 효과가 뛰어나다.
한국에는 약 130개 업체가 다단계 판매업으로 등록되어 있다. 부모님 돈이니 내가 간섭할 일도 아니고 해서 그냥 물건을 좀 비싸게 사셨나보다 하고 넘기려 했다. 그런데 아빠가 말하길 정수기가 지금 주문이 밀려 한 달 뒤에 받기로 했단다. 카드로 이미 100만원이 넘는 돈을 결제 했는데 제품은 한 달 뒤에 준다고? 수상한걸. 아빠도 회사가 판매업 등록을 하지 않아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회사 측에서는 등록을 하면 국가에 33% 세금을 떼는데 이 세금을 회원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일부로 등록하지 않는 거라고 홍보를 한단다. 뭔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하자 아빠는 정수기를 만든 사람이 그 회사 회장이 맞는지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구글 번역기를 돌려 증거를 찾아냈다. 발명가는 따로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그 회사 리더들이 소통하는 밴드를 발견했다. 공지사항을 몇 개 읽어보니 SNS 모임을 텔레그램 방에서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을 안 쓰고 굳이 텔레그램 앱을 설치해서 거기서 소통한다고? 대화기록 저장이 안 되는, 고도의 정보 보안을 요구하는 텔레그램을 왜 사용하지? 정상적인 회사라면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정보를 주고 받을텐데.
더 충격적인 건 수당을 코인으로 준다는 거다. 너희들 정체가 뭐냐? 코인이나 텔레그램방과 관련된 건 거의 사기라고 보면 된다. 경찰이 추적하지 못하도록 텔레그램과 코인으로 거래하려는 거겠지. 코인마저 막판이 되면 지급을 미루다 도망가면 끝.
그제야 부모님은 그 회사가 불법이며 정수기를 받지 못할 거라는 깨달음을 얻으셨다. 부모님이 정수기를 구입했던 이유는 회장의 강연 때문이었다. 회사 회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으며, 금식 기도를 하도 많이 해 이가 몽땅 빠졌다고 했다. 강의 중간에 찬양까지 했다니 말 다했지. 전 재산을 한국에 기부할 거라고도 했단다.
부모님은 생각했다. 평생을 인류를 위해 헌신한 분이 발명한 물건이니 얼마나 좋을까. 신앙적으로 순수한 부모님은 누군가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대놓고 거짓말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원래 사람을 잘 믿었다. 빤히 손해를 보면서도 서로 믿고 사는 거라고, 넌 왜 그렇게 사람을 못 믿느냐고 되묻는 부모가 얼마나 얄미웠던가. 이번이야말로 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할 절호의 기회였다.
부모님이 당한 건 폰지 사기다. 폰지 사기의 원리는 이렇다. 사업 초반에는 회사에서 수십 명, 수백 명에게 수당을 지급한다. 제품도 정확하게 제공한다. 한 명 소개할 때마다 통장에 수당이 찍히는 걸 보면 사람들은 생각한다. 정말 이 사업은 대박이구나. 회사 말대로 돈이 들어오는 걸 본 소수의 사람은 이제 열정적인 사업가가 된다. 제가 증인이에요.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니까요. 이 제품을 썼다니 병이 싹 나았어요. 놀라운 제품이라니까요.
사람들은 소수의 간증을 듣고 하나 둘 회원 가입을 하기 시작한다. 회사는 이미 가입한 회원 돈을 빼어 그 다음 회원에게 주면 된다. 아랫돌 빼어 윗돌에 얹는 방식으로. 돈 액수는 점점 커져가고 물레방아는 신나게 돌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리더들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지연되고 회사 측에서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며칠 후, 펑! 눈 떠보면 아무도 없다. 어라? 다들 어디 갔지? 내 정수기는?
부모님을 실컷 비난한 후 흡족한 마음으로 서울에 있는 회사를 방문했다. 부모님도 대동했다. 회사는 건물 1층과 2층에 대충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아 급조한 모습이었다. 밖에는 건장한 남자 몇 명이 이유 없이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만약의 경우를 위해 핸드폰 녹음기를 몰래 켠 후 당당한 목소리로 결제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안된다고 하면 경찰서를 가려 했는데 다행히 환불 처리를 해줬다. 서울 온 김에 남산을 오르기로 했다. 개나리가 활짝 피어난 봄날이었다.
“와. 얼떨결에 다 같이 남산에 왔네. 날이 참 좋아요. 아빠.”
그러자 아빠가 대답했다.
“옛날에 아버지 거지와 아들 거지가 살았대. 길을 걷다 어느 집에 불이 나 활활 타고 있는 걸 보고 아들이 말했대. 아버지, 우리는 집이 없어 불날 일도 없네요.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했대. 다 내 덕 인줄 알거라.”
나는 아빠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맞아. 아빠 덕에 남산에도 왔네. 우리 돈까스나 먹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