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아, 아이 없는 게 축복이다. 애 있으면 다 클 때까지 마음 졸이고 살아야 돼. 내가 너희 키우다 두 번 죽을 뻔 했어. 한번은 너 때문에, 한번은 강은이 때문에. 네가 다섯 살 땐가 바위같이 큰 돌 위에 올라간 거야. 그러다 발을 헛디뎠는지 뒤로 발라당 넘어졌어. 울음소리를 듣고 얼른 뛰어갔는데, 세상에 네 눈이 뒤집어 진거야. 나는 놀라 방방 뛰고 난리가 났지.
근데 니 아빠는 침착하게 서 있기만 하고. 아빠는 왜 침착하게 있었냐고? 그러게? 아니 그러고 보니 당신 그때 왜 방방 안 뛰었어요? 애가 죽어 가는데? 위급할 때일수록 침착해야 된다고요? 아무튼 그래서 널 들쳐 업고 병원으로 가려는데 뒤집힌 눈이 딱 정상으로 돌아오는 거야. 그제야 살았다 싶었지.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또 한 번은 강은이가 물똥을 싸는 거야. 애가 힘없이 보글보글 물똥만 싸니까 얼마나 무섭니. 놀라서 또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옆집 아줌마를 만난거야. 사정을 얘기하니 약국 가서 무슨 약을 먹으면 금방 나을 거라고 알려주지 뭐니. 그래서 그 약을 먹었더니 애가 살아나더라.
그 당시만 해도 육아 책 같은 것도 없고, 주변에 아기 엄마도 없고 해서 너희 키우는 데 애먹었다. 나중에 몬테소리 교육 받고 나서 삼 일 밤을 울었단다. 너희들을 제대로 못 키워서. 무지해서 너희들을 막 키웠어. 미안하다.
그래도 엄마랑 아빠는 너희 어렸을 때 스킨십을 많이 해줘서 다행이야. 아니지. 강은이 공부 안한다고 때리고, 너 밤늦게 들어온다고 때리고, 내가 부모한테 받았던 상처를 다 너희한테 풀었어. 그때는 그런 줄도 몰랐지. 나중에 치유 상담 공부 하고보니 그게 보이더라. 아이 키우는 부모들이 부모 상처를 치유해야 얘들한테 큰 상처를 안 주는데. 걱정이야. 네가 맞을 짓을 했다고? 아니야, 그래도 내가 잘못했지.
지금 얘들 마스크 쓰고 다니는 거 봐라. 한참 뛰어놀 나이인데 얼마나 답답하겠니. 황사 심하지, 환경은 계속 파괴되지, 바이러스 공포에, 아이 키우는 부모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 차라리 아이 안 갖는 게 낫다. 너도 지금 아이가 없으니 우리한테 맨날 놀러오고 남편이랑 신혼처럼 살지. 아이 있어봐라. 어디 맘대로 놀러도 못가고, 책도 못 읽고, 잠도 못자고. 니 팔자가 제일 좋다.
아참, 그런데 이번에 엄마 친구 딸이 임신에 성공했다고 하더라. 오랫동안 아이 가지려고 별별 방법을 다 썼다는데. 여보, 당신도 그 소식 들으셨죠? 예산에 기가 막힌 곳이 있다더라. 거기 약 먹고 성공한 부부가 많다네. 내가 노트에 적어놨는데 어딘지 알려줄까? 저번에도 기가 막힌 데서 한약 먹었는데 소용없었다고? 이번엔 다를지도 모르잖니. 그래도 알아두면 좋잖아. 주변에 필요한 사람도 있을 테고.
요즘은 시험관 하는 부부도 많다던데. 시험관은 성공 확률도 높다더라. 여보, 저번에 누가 시험관 성공했다고 했죠? 기억 안 난다고요? 아이가 예쁘기는 하지. 바라보기만 해도 좋잖니. 옛날에 몸살이 나서 꼼짝도 못하고 방에 누워 있던 적이 있었거든. 근데 강은이가 밖에서 놀다가 엄마 하고 부르면서 들어오는 거야. 그 소리를 듣는데 몸에서 힘이 확 나더라. 자식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나더라니까.
엄마가 처녀 때 옆집에 어떤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사셨거든. 그분들이 가난했는데도 부모 없는 아이 하나를 데려다 키웠어. 어떻게 입양 했냐고? 요즘은 입양 조건이 까다롭다고? 옛날에는 부모 없는 고아들이 많아서 그냥 데려다 키우고 그랬어. 근데 할머니가 암에 걸리신 거야. 어느 날 할머니 집에 병문안을 갔는데 마침 할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셨어. 할머니 주려고 붕어빵 다섯 개를 사가지고.
그런데 할머니가 봉투에서 붕어빵을 꺼내 아이에게 하나씩 하나씩 먹이는 거야. 엄마는 마음속으로, 할머니가 드시고 힘을 내야 되는데, 왜 아이한테 주나 속이 상했지. 아이는 내 맘도 모르고 그걸 하나하나 다 받아먹는 거야. 혼자 다섯 개를 다 먹더라니까.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붕어빵 먹는 아이를 보며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호호 웃으시더라니까. 결혼 하고 자식 낳아보니 그 마음 알겠더라.
너희는 나이 들면 누가 보살펴주니? 우리는 네가 있어 병원도 함께 가고 마음이 든든한데. 남편이 있다고? 그래도 항상 건강 잘 챙겨야 돼. 나이 들어서 둘 다 아프면 어쩔 거니? 새로 나오는 기술들도 미리미리 잘 배워두고. 나이 들어서 모르면 누구한테 물어보겠니. 조카들 있다고? 조카들도 자기 삶이 있는데 얼마나 바쁘겠어. 남편이랑 둘이서 잘 헤쳐 나가야 돼. 그러니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긍정적으로 살아. 엄마가 매일 너희들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