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은 출근할 때 거의 매일 전화를 한다.
아이가 둘 있고 외벌이라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동생은 뭐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 아침마다 전화를 한다.
하지만 인천에 살아 한 달에 한 번은 만나는 동생과 내가 할 얘기가 딱히 있진 않다.
하도 전화를 해서 언젠가 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차를 운전하고 갈 때 가만히 있으면 좀 외롭니?
그럴 때도 있다고 했던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섬세한 아이라 질문의 의도를 눈치챌까봐 더 이상 묻지는 못했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밤새 안부를 묻고, 오늘 날씨에 대해 품평한 후 엄마가 갑자기 눈에 이상이 생겨서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한다.
동생은 심각한 목소리로 알았다고 하며 진행되는 상황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심사가 꼬여버렸다.
진행되는 상황을 알려달라고? 너가 내 상사니? 왜 맨날 내가 알아봐야 돼?
저번에 엄마 손목 부러졌을 때도 입원부터 퇴원까지 모든 걸 나 혼자 처리했는데? 난 안 바쁜 줄 아니?
마음속으로 온갖 생각이 몰려온다.
“또 내가 하라고? 이번엔 너가 알아봐.”
나도 모르게 말을 내뱉어 버렸다.
기분이 상한 동생은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이미 다 알아보고 예약도 했는데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동생은 회사일로 정신없고 집에 가면 아이들 돌보느라 바쁘다는 걸 잘 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 아이들이 아프면 어쩔 줄 모르고 당장 병원을 알아보면서
자기 부모가 아프면 왜 그 정도로 관심을 갖지 않는건지.
누나가 있으니 신경을 덜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남자라서 표현을 잘 못하는 걸까?
오랜만에 구역 모임에 갔다.
함께 기도제목을 나누고 담소를 즐겼다.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낸 구역식구가 있었다.
그 언니는 3년 넘게 엄마 병간호를 했다.
나는 언니에게 우리 부모님은 이제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다고, 그래서 두렵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아팠던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었냐고, 엄마를 떠나보낸 후 한편으로 가벼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언니는 대답했다.
“병간호 하다보면 가족 간에 예민해지고 지치긴 해.
엄마도 본인이 아프니 우리 힘든 거 알면서도 자꾸 짜증을 내거든.
잘못하면 형제 자매간에 우애가 금갈 수 있으니 서로 간에 더 조심해야 돼.
엄마 돌아가시고 나니 양가감정이 들더라.
나 어릴 때 엄마가 바쁘다고 나를 거의 안 챙겼거든.
근데 난 엄마 병간호 하느라 내 아이들 양육도 신경 못쓰는구나 생각하니 속상하기도 하고.
엄마랑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어.
그런데 있지.
엄마 돌아가시고 나니까,
엄마가 그냥 누워만 계셔도 좋으니 살아계시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왈칵 난다.
부모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복인데 그걸 잊고 있었구나.
눈물을 글썽거리는 나를 보며 언니가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인다.
“근데, 남자형제는 별 도움이 안돼.”
눈물이 쏙 들어간다.
그렇구나. 그러면 동생한테 부담주지 말고 내가 하자.
엄마 병원 모시고 다니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생색을 냈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동생은 다른 영역에서 부모님의 삶을 챙기고 있다.
핸드폰 요금과 TV요금을 묶어 더 저렴한 상품으로 바꿔주는 건 동생 몫이다.
부모님이 쓰실 전자제품을 고르는 것도 동생 몫이다.
명절마다 친척들을 챙기고 시골에 내려가는 것도 동생 몫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과 동생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른 것 뿐인데
그걸 깜박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어려울 때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인생 선배들이 있어 감사하다.
감사와 평화로 마음이 가득 차오를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