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살이 쪄서 행복한 가족

by 유자와 모과

3년 전, 아빠가 수원으로 이사 오셨을 때 몸무게가 54kg였다. 키는 170cm. 칠십 평생 살아오시면서 당신 장이 망가진 적이 딱 두 번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10년 전이었다.

젊은 날에 개고기를 먹다 체한 이후 고기보다는 야채와 곡물을 즐겨 드시던 아빠였기에 항상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긴 했다.

그러다 장이 망가지니 현미나 딱딱한 과일을 소화를 못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짬뽕이나 과자도 마찬가지였다.

밀가루 음식만 먹으면 배가 아팠기에 아빠는 붕어빵 하나조차 마음껏 먹을 수 없었다.


장은 음식물이 지나가는 기관이다..

장은 먹은 음식의 영양분을 흡수하고 독소를 체외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장은 ‘제 2의 뇌’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장내 환경이 악화되면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행복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95%가 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소화관이 원활해야 기분도 좋아지는데 뭘 먹어도 배가 사르르 아프니 아빠 마음은 얼마나 우울했을까.


일 년 넘게 고생하다 아빠는 좋은 건강식품을 알게 되었고 신기하게 그 식품으로 장을 고쳤다.

다시 기운을 차린 아빠는 신이 났다.

가족들은 뻥튀기도 먹고, 꽈배기고 먹고, 짬뽕도 먹고, 사과도 먹으며 행복해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음식이 소화가 되니 뱃가죽에 살이 붙었고 아빠는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우리 아빠는 몰입형 인간이다.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죽어라 판다.

나도 아빠와 비슷한 성향이라 그 마음을 이해는 한다.

몸을 회복한 아빠는 컨디션을 조절하지 않은 채 한 가지 일에 집중하다 과로가 쌓여버렸다.

그러다 펑.

장이 또 망가져 버렸다.


장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 체계 균형을 파괴하고 염증을 일으킨다.

이번에는 건강 식품도 소용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큰 일을 볼 때마다 피가 나왔다.

몸에서 피가 빠져 나가니 아빠 기운은 점점 소진되어 갔다.

서둘러 병원을 예약하고 대장내시경 검사를 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작은 폴립 2개만 제거했을 뿐이었다.

며칠 뒤 피는 멎었지만 아빠는 힘이 다 빠져 링겔을 맞아야만 했다.


대장이 괜찮다면 소장이 문제일까?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해부 생리학 책을 펼친 채 위부터 충수까지 모든 부위를 하나하나 따져 보았다.

모든 암을 검토하고 아빠 증상에 대입해 보았다.

괴로운 시간이었다.

잘 먹지를 못하니 아빠는 살이 급격하게 빠져 다시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을 정도였다.

아빠는 배가 수시로 사르르 아파서 밖에 오래 있는 것도 두렵다고 했다.

가족들은 아빠 살찌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밖에서 외식하는 걸 끔찍이 싫어하고 단 음식을 경계하는 엄마는 아빠가 빵집에서 단팥빵이라도 하나 사오면 몸에 좋지 않은 걸 왜 먹냐고 잔소리를 했다.

평생 아빠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기듯 집안 구석구석에 간식을 숨겨놓고 먹어야 했다.

그렇다고 엄마가 아빠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이제 아빠가 밖에서 뭘 먹든, 뭘 사오든 절대 잔소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니 아빠 봐라. 삐쩍 말라서 얼마나 불쌍하니. 이제 먹고 싶은 거 다 먹게 놔둬야지. 저러다 돌아가시면 내가 얼마나 죄책감이 들겠니.”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아빠를 모시고 일주일에 한번 가까운 곳이라도 나들이를 떠났고, 한 두달에 한번은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갔다.

평소라면 집순이인 엄마는 안 가겠다고 딱 잘라 거절했겠지만 그 당시는 아빠 마음을 편하게 하고 살찌게 하는 게 우선인지라 암말 하지 않고 따라갔다.

나와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청국장과 코다리 조림, 혹은 생선구이를 질리도록 먹었다.


동생은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온갖 약들을 구해왔고 아빠는 하나씩 먹어보며 정말 도움이 되는지 자신의 소화기관을 테스트했다. 한의원에서 체질검사를 했고 뭘 먹어야 하고 뭘 조심해야 하는지를 하나씩 체크했다.

우리 가족은 매일 아빠가 살찌게 해달라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아빠의 장은 조금씩 나아졌다.

정말 정말 조금씩.


1년이 지나자 아빠는 메밀 짬뽕을 먹을 용기를 내었고, 2년이 지나자 쌀 뻥튀기를 간식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3년차, 며칠 전 집에 갔더니 엄마가 소리친다.

“하림아. 아빠 살쪘다. 배 좀 만져봐.”

“진짜? 아빠 이리 와 봐요. 어머. 진짜 아빠 배가 나왔네. 세상에. 몸무게 재 봐요.

얼마에요? 64kg? 아빠 살쪘네. 어떻게 살이 찐 거에요?”

“매일 꿀 먹고, 가끔 밖에서 먹고 싶은 거 다 사먹으니 살이 찌네.”


아빠는 어디선가 꿀에 영양이 듬뿍 들어있다는 말을 듣고 내게 좋은 꿀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사양꿀(설탕꿀)이 아닌 천연꿀을 주문해 드렸고 아빠는 매일 한 숟가락씩 꿀을 드셨다.

꿀을 먹고부터 소화가 잘된다는 말을 하셨는데 정말 효과가 있긴 한가보다.

참고로 아빠처럼 소화가 안 되었던 내 친구는 동결 양배추 가루를 매일 아침 따뜻한 물에 타서 먹고 속이 많이 나았다고 한다. 양배추는 위에 좋은 식재료라 분명 도움이 된다. 비릿한 맛이 나서 마시기 힘들면 꿀을 한 숟가락 타면 된다.


지금 내가 갖고 다니는 자동차는 아빠 명의다.

아빠가 나이가 들어 운전하기 힘들다며 가끔 운전기사 노릇 좀 해달라고 부탁한 후 내게 차를 넘겼다.

기름 값도 수년 째 아빠 카드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 정도는 자기가 부담할 수 있다며 그냥 쓰라고 하신다.

몇 달 전에 아빠에게 신용카드를 주며 말했다.


“아빠, 밖에서 먹고 싶은 음식 있으면 이걸로 드세요. 마트에서 먹고 싶은 과일이 있는데 비싸서 망설여지면 이걸로 사세요. 기름 값 대신이니 마음껏 쓰세요.”


아빠는 카드를 받으며 고맙다고 활짝 웃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빠가 마음껏 외식 하셔도 한 달에 20만원이면 충분하겠지.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 카드를 쓴다.


딩동.

카드 내역이 찍히는 시간은 주로 오후 4~5시쯤.

아빠가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는 시간이다.

찍히는 장소는 콩나물 국밥 집이거나 순대국밥, 혹은 돈까스 집이다.

간혹 떡집에서 떡을 사시기도 한다.

찍히는 가격은 8천원에서 만 천원 사이.

동생에게 얘기했더니 속상하다고 한다.

아빠가 그것밖에 안 쓰신다고?


나는 집에 갈 때마다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먹고 싶은 거 없어?

딩동, 문자가 올 때마다 혼자 고개를 숙이고 국밥을 먹는 아빠 모습을 그려본다.

한 달에 5만원도 쓰지 않으면서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다닌다는 아빠.

먹고 싶은 음식을 사먹었더니 살이 쪘다며 웃는 아빠.

아빠가 드디어 살이 쪄서 엄마도 나도 동생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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