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이 지났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감감무소식.
우리보다 늦게 옆 테이블에 앉은 학생들은 하몽을 돌돌 감은 멜론을 먹고 있었다.
“자기야, 아무래도 이건 우리가 동양인이라 그런 것 같아. 차별하는 거 아닐까?”
“설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곧 나오겠지.”
20분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음식이 나왔다.
바르셀로나 골목에 있던 어느 식당에서 빠에야를 처음 만났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린 터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체 이게 뭐라고.
빠에야를 한 입 먹는 순간 불편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와. 뭐가 이렇게 맛있지?
우리는 정신없이 먹었다.
차별을 좀 당하긴 했지만 음식이 맛있으니 용서해 주자며 냄비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파에야(paella)는 얕고 둥글며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팬을 뜻하는 말로, 해산물을 넣은 스페인의 쌀 요리이다.
빠에야에 홀딱 반한 우리는 스페인을 여행하며 어딜 가든 빠에야가 있나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톨레도에 있는 어느 식당 앞에서 커다란 입간판을 발견했는데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빠에야 요리 40분 걸림’
그제야 우리는 빠에야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임을 알게 되었다.
오해가 풀렸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서 김영하는 적는다.
‘카부르 거리의 골목 속에 숨어 있는 멋진 식당들에서 먹은 요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곳이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 싱싱한 문어와 오징어, 새우와 조개로 요리한 리조토와 파스타, 상큼한 전채와 따뜻한 홍합 스프, 친절하고 소박한 주인들이 접시를 비운 우리를 보고 기뻐하며 “음식이 마음에 들었느냐.” 조심스레 묻던 장면들도 차례로 떠오른다.’
순전히 요리 때문에 그리워지는 장소가 있다.
한국에 돌아와 빠에야 파는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홍대, 서촌, 광화문을 돌며 빠에야를 먹어봤지만 뭔가 아쉬웠다.
“안되겠어. 내가 만들어야겠어.”
“만들기 복잡하지 않아?”
“레시피를 간단하게 줄여보게.”
저마다 김치찌개 끓이는 방법이 다르듯 빠에야 요리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면 된다.
수 십가지 조리법을 검색한 후 꼭 필요한 향신료와 재료만 추렸다.
몇 번 파에야를 만들어 보면서 불필요한 과정도 없애 버렸다.
그렇게 해서 우리집 파에야 레시피가 완성되었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파에야를 만들기 시작한다.
싱싱한 조개를 마음껏 넣을 수 있으니까.
우리집 2인분 레시피는 이렇다.
재료 : 양파 1, 토마토 2(혹은 홀 토마토 캔), 각종 조개와 해산물, 샤프란 20가닥(혹은 강황가루나 빠에야 시즈닝), 생쌀 2/3컵, 파프리카 가루, 마늘, 치킨스톡, 레몬즙, 올리브오일
1. 팬에 다진 마늘을 넣고 올리브유에 달달 볶는다.
2. 거기에 물 300ml, 조개와 해물을 넣고 센 불에 3분 끓인다.
3. 해산물은 건지고 육수는 볼에 따라놓는다.
4. 다시 그 팬에 기름 두르고 다진 양파와 다진 마늘을 넣은 후 달달 볶는다.
5. 깍뚝썰기한 토마토, 샤프란, 후추, 소금, 파프리카 가루를 넣고 좀 더 볶는다.
6. 생쌀, 해산물, 육수, 치킨 스톡 넣고 뚜껑 닫아 끓인다.
7. 끓으면 중불로 10분 익힌다.
8. 뚜껑 열고 중불로 10분 졸인다. 이때 조개는 절대 뒤적거리지 말자.
9. 바닥에 눌어붙을 때까지 더 졸여도 된다.
10. 레몬즙과 올리브 오일 쓰윽 뿌리면 완성.
이번엔 모시 조개, 백합, 바지락만 넣어 만들었다.
집 앞 슈퍼에 내사랑 가리비가 없더라.
오징어를 넣으면 더 맛있겠지만 자르기 귀찮아서 안 샀다.
남편이 옆에서 “그게 귀찮아?” 라고 묻길래
“그럼 네가 자를래?” 했더니 조용해졌다.
더이상 부연 설명은 안했지만, 오징어를 안산 이유는 냄새 때문이다.
오징어를 그냥 도마에 놓고 자르면 ‘냄새’가 베인다.
도마 위에 펼칠 우유 곽 같은 게 필요한 데 우리 집엔 없다.
유산지를 깔고 자른다 하더라도 오징어를 씻고 손질하는 과정에서
싱크대 어딘가에 ‘해산물 냄새’가 배인다.
내 손에도 배인다.
다음날까지 지속되는 그 ‘미미한 비린내’가 나는 괴롭다.
집에서 오징어 볶음을 꺼리는 이유다.
쓰다 보니 내가 너무 까다롭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징어 볶음 좋아하는데.
우유 곽부터 마련해볼까?
나는 샤프란을 넣었지만 다 쓰고 나면 강황 가루나 빠에야 시즈닝으로 대체할 것 같다.
샤프란을 따뜻한 물에 넣고 차로 마시기도 하는데 특정한 맛이 나지는 않는다.
노란 색이 곱기는 하나 샤프란이 어떤 풍미를 더해 주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마 같은 감칠맛일까? 그렇다면 꼭 필요하긴 한데.
직접 만든 빠에야는 밖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다.
바닥에 눌어붙은 밥알까지 싹싹 긁어먹는 즐거움.
만드는 과정이 귀찮은 게 단점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