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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뱅쇼와 사케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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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펙토텀>에서 찰스 부코우스키는 말한다.


‘나는 침대로 들어가 포도주 병을 따고, 베개를 등받이 삼아 뒤에 단단히 받치고, 숨을 깊게 들이쉰 다음, 어둠 속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지난 닷새 동안 혼자 있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나의 고독을 전혀 떠벌리지 않았다. 다만 그것에 의존할 뿐이다. 방 안의 어둠은 내게는 햇살과도 같았다. 나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술은 거의 집에서 마신다.

술 못 마시는 남편에겐 진저 에일과 안주를 건넨다.

와인 한 병을 사면 혼자 여러 번 나눠 마신다.

여름에는 샤르도네, 겨울에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산다.

와인 키퍼로 보관하지만 일주일쯤 지나면 왠지 마시기 싫어지고, 때마침 겨울이라면 뱅쇼를 만든다.

프랑스어인 뱅쇼(Vin Chaud)는 따뜻한 와인이라는 뜻으로 유럽에서 흔히 마시는 음료이다.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적포도주에 신맛 나는 과일과 향신료를 넣고 우려내듯 약불에 30분 정도 끓이면 된다.

끓으면서 알코올이 날아간다.


정향(클로브), 팔각, 오렌지, 귤, 시나몬, 설탕을 넣어 끓였다.

레몬이 없어 레몬즙을 넣었다.

한 잔 분량이라 10분만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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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종이팩 사케도 사다 놓는다.

흰 눈이 펑펑 내리거나 찬바람이 무섭게 부는 날에는 뜨거운 사케가 제격이다.

도쿠리 안에 사케를 따르고 그대로 냄비에 올려 중탕한다.

안주는 튀김이 어울리지만 없으니 새우깡으로 대신한다.

먹어보니 어울리지 않는다.

과자는 남편에게 주고 술만 홀짝 마신다.


혜화역 부근에 오래된 오뎅바가 있다.

겨울이면 그곳에 앉아 대포 한잔을 시켜 호호 불며 마시곤 했다.

딱 한 잔이면 충분했다.

앉는 곳은 불편하지만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항상 북적이던 곳이었다.

몇 년간 가지 못했는데 찾아보니 아직도 무사히 영업을 하는구나.

남편은 오뎅바를 싫어한다.


신혼 초부터 남편에게 이런 말을 들어왔다.


“오뎅이 담긴 큰 통 앞에 앉아서 사람들이 얘기하면서 먹을텐데, 그 침이 다 어디로 튀겠냐고.

뷔페도 마찬가지야. 서로 얘기하면서 음식 뜨고 그러잖아.

빵집에 나열된 빵들도 마찬가지야.”


남편 말은 일리가 있었지만 무시했다.

맛있으면 되지 깐깐하게 왜 이래.

코로나가 터진 이후에야 남편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미 수많은 오뎅을 먹은 후였지만.

다행히 사람들의 위생관념도 함께 높아져 진열된 음식을 잘 덮어두는 식당과 빵집이 많아지고 있다.


이래나 저래나

추운 날에는 뜨거운 술, 더운 날에는 차가운 술 마시는 재미가 있다.

혼자 마셔도 좋은 뱅쇼, 함께 마시면 더 좋은 사케.

일상의 달콤한 순간들. 너무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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