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짝 친구 은진이를 만났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몇 안 되는 친구들 중 가장 오랜 된 친구다.
초등학생 때 만났으니 30년 지기 친구라 할 수 있다.
20대 때는 사는 도시가 달라 일 년에 한두 번 본 적도 있었지만 내가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는 한두 달에 한번은 만났다.
함께 도쿄도 가고 베이징도 갔다.
여수도 가고 충주도 갔다.
전라도 광주에서 친구와 새해를 맞이하기도 했다(남편 미안).
함께 한 세월이 쌓이다보니 다양한 추억 또한 쌓여간다.
친구를 굳이 만나야 할 이유는 없다.
평소에 서로 연락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면 왠지 잘 살고 있나 궁금해진다.
은진이는 웃음이 많다.
어릴 때도 잘 웃었는데 커서도 잘 웃는다.
나도 잘 웃는 편이지만 은진이를 따라갈 수 없다.
목소리 톤도 높아 통통 튄다.
40년 동안 인간관계를 맺으며 알게 된 게 있다.
기가 센 사람과는 친구로 지내기 어렵다는 거다.
나는 누가 내 머리채를 낚아채면 맞서지 못하고 흐느껴 우는 쪽을 택할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둥글둥글한 성향을 가진 사람과 잘 맞는다.
은진이는 동글동글 굴러가다 못해 미끄러질 정도다.
은진이는 내 어릴 적 과거도 소상히 기억한다.
내가 과거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 반 친구들은 누구였는지 은진이는 다 안다.
오늘 안 사실인데, 중학생 때 은진이 집에만 가면 내가 유승준 비디오를 틀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빠져들었다고 한다.
맞다. 나 유승준 좋아했지.
은진이는 패션에 뛰어난 감각을 지녔다.
은진이는 나라면 절대(공짜로 줘도) 입지 않을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소화한다.
나는 옷 선택 기준이 까다롭지만 은진이가 골라 준 건 마음에 들 때가 많다.
은진이는 짝짝인 내 눈썹을 동일한 평행선 안에 놓는 방법을 알려준다.
나이가 들수록 머릿결이 중요하다며 부드럽고 찰랑거리는 방법을 설명한다.
옷을 좀 더 과감하게 입어보라고 조언하고 직접 만든 향수를 선물한다.
내 미모 향상의 10% 정도는 은진이 덕이다.
은진이는 놀이 치료사다.
은진이 성격과 직업이 잘 어울린다.
나도 아이들을 좋아하기에 은진이 얘기를 듣는 게 즐겁다.
상처 입은 아이들이 은진이를 만나 명량함과 밝은 모습을 되찾으면 좋겠다.
우리는 인도 커리를 먹으며 보톡스 주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인들이 슬슬 보톡스를 맞을까 고민하는데 그 마음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은진이는 진피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귤껍질 진피 말하는 건 아니지?)
진피가 튼튼해야 나이가 들어도 피부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넌 정말 모르는 게 없구나.
우리는 카페로 자리를 옮겨 올해도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보자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그러므로 친구란, 좋은 사람에 대하여, 선의를 품고 있어 상대방이 잘 되기를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을 서로가 알고 주고받는 사이에서 성립한다.’
마음 맞는 친구를 찾는 것도 어렵고, 찾았다 해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반경에서 사는 것도 어렵다.
두 가지 조건이 딱 맞을 때 ‘오래된 현재진행형 단짝 친구’가 탄생한다.
은진이는 나를 단짝 친구라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물어볼걸 그랬나?), 내게 은진이는 단짝 친구다.
친구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