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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an 23. 2024

2024년 1월 소비단식(2)

2028년 1년 휴직 프로젝트

결혼했을 때 남편이 내게 요구한 건 단 하나였다.

“어떻게 쓰든 상관 없으니 월급 가지고 불평만 하지 말아줘.”     


남편은 나와 결혼하겠다고 서울로 올라오며 새 직장을 구했다. 

경력을 버리고 신입으로 들어갔기에 처음엔 예전 회사보다 월급이 적었다.

나는 불평하지 않았고 남편은 돈을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남편 뜻을 받들어 나는 마음대로 돈을 썼다.     

서울의 온갖 맛집과 카페를 돌아다녔다 .

전시회와 음악회도 주구장창 다녔다.

여행은 말할 것도 없지.

저축할 돈은 당연히 남아있지 않았다.

빚을 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남편은 검소한 사람이었다.

나는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현재만 즐기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남편에게 잔소리하지 않았듯 남편도 내게 잔소리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건 3~4년 후였다. 

신혼 초창기 때 문화생활과 맛집 탐방에 집중했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돈을 쓰지 않았다면 'XX 총량 법칙‘에 따라 지금쯤 신나게 카드를 긁고 있을 게 분명하다. 

궁금한 건 직접 맛보거나 가보지 않고는 못 참는 성격이니까.     


반지하에 살면서도 행복했던 건 황당하게도 ‘남과 비교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었다. 

남이 좋은 차를 타든 좋은 집에 살든 승진을 하든 부럽지 않았다. 

내 것도 아닌데 부러워 할 게 있나. 박수쳐주면 그만이지.

10평짜리 반지하에서 전세로 신혼을 시작했을 때 남편 직장 동료들, 내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몇 번이나 집들이를 했다. 

나중에 누군가가 “나라면 반지하에서는 집들이 못할 것 같아”라고 슬쩍 말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그 말 자체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뭐가 문제여서 못한다는 거지? 음식 준비하는 게 힘드나?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햇빛 때문이다.

4년 동안 햇볕이 들지 않은 집에 살다보니 햇빛이 그리워졌다. 

방안에는 곰팡이가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햇빛이 들어오는 집으로 이사하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돈을 어떻게 모아야 할까?

도서관에 달려가 관련 책을 모조리 읽어나갔다.

새 집이라는 강한 목표가 소비의 관성을 끊게 만들었다.    

 

햇빛이 들어오는 집으로 이사 온지 6년이 지났다.

매일 아침 밖에서 비치는 햇살을 느끼며 눈을 뜰 때마다 엄청난 행복을 느낀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처럼 설렘과 기쁨은 여전하다.     


가끔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결혼하려면 반지하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앞으로 좋아질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살수록 기쁜 일만 늘어난다. 


마찬가지로 자동차를 사려면 작은 차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우리는 지금 경차를 타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차를 사든 지금보다는 승차감이 좋을 거다.

나중에 큰 차를 몰게 되면 내부가 얼마나 조용할지, 경사구간은 얼마나 쉽게 오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남편의 1년 휴직이라는 새 목표가 생겼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습관처럼 하던 여행을 가지치기 해야 한다.

강릉에 다녀 온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2월까지는 버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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