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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Feb 01. 2024

2024년 1월 소비단식(3)

2028년 1년 휴직 프로젝트


“뭔가 허전해. 맛있는 게 먹고 싶어. 떡볶이나 튀김 같은 거. 좀 사다줄래?”

“이 시간에? 지금 먹고 자면 체할텐데.”


주일 밤,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교회 행사가 있어 하루 종일 바쁜 날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5시. 

교회서 받은 김밥으로 이른 저녁을 먹었다.


평소 같으면 오후에 낮잠도 자고 책도 읽으며 충분히 쉬었을 텐데 그날은 그러지 못해 만사가 귀찮았다. 

소파에 늘어져 있으니 음식만 자꾸 떠올랐다.

짜장면, 크림빵, 새우튀김, 파전, 떡볶이, 탕수육...     


몸과 정신이 피곤할수록 달고 짠 음식이 생각난다.

책상에 앉아 추리소설을 읽고 있던 남편에게 사다달라고 요구했다. 

거부당했다.


남편은 지금 먹으면 반드시 체할 거라고 했다. 

배가 아파 밤새 괴로워할 거라고.

맞는 말이다.

몸이 피곤할 때 과식하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대부분 체한다.

나는 밤새 아파도 괜찮다고 했다. 

남편은 책장만 넘겼다.     


안되겠어. 오늘은 뭔가 정말 먹고 싶어.

배달앱을 켰다.

떡볶이와 모듬 튀김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니 근데 떡볶이 가격이 왜이래?

1.6인분이 7,500원이다. 

떡볶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비싸졌지?

배달료를 포함하니 18,000원이 찍힌다.     


평소였다면 결제했을 거다.

배달은 일 년에 한 번도 드문 일이니까.

남편도 ‘쟤가 정말 먹고 싶나보네’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남편 휴직 프로젝트’가 마음에 걸렸다.

사소한 소비가 모여 카드 값이 눈덩이처럼 커지는데.

저축을 늘리려면 카드값을 줄여야 한다.      


지금 나는 지친 몸을 위로하기 위해 돈을 쓰려는 건데, 먹고 나면 지친 몸은 오히려 소화를 하느라 더 지칠 게 분명하다. 

돈을 지불함으로 배고픔을 없애는 것도 아니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잠시 ‘입의 만족’만 있을 뿐이다.      

떡볶이 가격이 3,500원이면 주문했을 거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

가까스로 유혹을 이겨냈다. 

목표를 되새기며 잠자리에 들었다.

뱃속이 편안한 밤이었다.      


일주일 후.

이번엔 아이스크림이다. 

토요일 밤, 느닷없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소비 단식을 시작하면 처음 몇 개월이 가장 힘들다.

별 생각없이 쓰던 돈을 별 생각있게 쓰게 되면 반발심이 올라온다.

내가 이런 것까지 아껴야 해? 

맞다. 이런 것까지 아껴야 돈을 모은다. 

말 그대로 ‘단식’이니까.     


그냥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벤엔제리스 체리 가르시아’가 먹고 싶다.

기타를 치고 있던 남편에게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거절당했다.

너 지금 먹으면 체해. 먹고 싶으면 내일 먹자.     

지난 주 떡볶이 유혹을 물리쳤던 게 큰 힘이 됐다. 

이번엔 금세 수긍이 되었다.

그래. 내일 먹으면 되니까.      


다음 날,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벤엔제리스 체리 가르시아가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아니 근데 가격이 왜 이래?

파인트가 16,800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잠시 고민하다 그냥 나왔다.

안되겠어. 내 생일은 되어야 먹을 수 있겠어.      

예전에 1+1 행사였을 때 실컷 먹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편의점을 돌며 한국에 들어온 모든 맛을 구매했다.


그리고 내게는 베스킨라빈스 싱글 레귤러 쿠폰이 한 장 있다.

자잘한 행운이 넘치는 남편이 룰렛 돌리기에서 당첨된 거다. 

우리는 베스킨라빈스로 발걸음을 돌렸다.

자기도 하나 사줄게. 골라봐.      


남편은 고심 끝에 새로 나온 황치즈 드레곤볼 맛을 선택했다.

나는 쿠키 앤 크림. 

체리 맛 먹고 싶다더니. 체리 주빌레 안 먹어?

그거랑 이거랑 같니?     


우리 집에서 아이스크림은 사치품목에 해당한다.

쿠폰이 있지 않는 이상 사먹는 경우는 드물다.

파인트 한 통도 그 자리에서 다 먹을 수 있지만 한 컵만으로도 감사하다. 

한적한 매장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씩 아껴 먹었다.

맛있더라.

꿩 대신 닭으로 만족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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