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교회 목사였던 아빠는 평생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고 글을 썼다.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주일예배 설교를 해야 했다.
설교문을 작성하다 보면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일 년이 갔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아빠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언젠가부터 나도 아빠처럼 글을 쓰게 되었다.
하루 종일 글감을 생각하고 글을 쓰다 보니 아빠 마음이 어떨지 조금씩 알게 된다.
글쓰기는 혼자 하는 작업이다.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글의 소재는 언제든 튀어오를 수 있다.
산책을 하다, 샤워를 하다, 운동을 하다 불현 듯 떠오른다.
보통은 간단하게 메모를 하지만 가끔은 당장 그 자리에서 쓰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하다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머릿속 생각을 글로 풀고, 생각하고, 이 과정을 하루 이틀 일주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답답한 마음이 든다.
아빠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새로운 풍경, 새로운 음식,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며 머릿속을 쉬게 할 수 있다.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며칠 동안 포근한 날이 지속되자 야외에 앉아 차를 마시고 싶다.
이런 날은 흔치 않은데.
아빠 마음도 살랑살랑 하겠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집 근처 카페에 가자고 했다.
아빠는 내가 가자는 곳은 무조건 간다.
엄마는 내가 가자는 곳은 무조건 싫다고 해서 설득의 과정을 거쳤다.
커다란 기와집을 카페로 만든 곳이었다.
빵도 팔았다.
우리는 야외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오미자 차를 마셨다.
아빠와 어릴 적 자주 먹던 맘모스 빵도 샀다.
엄마가 얘기하는 동안 아빠와 나는 차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쌀쌀했다.
카페 같은 델 왜 가냐고 묻던 엄마는 혼자 실컷 얘기하더니, 집에 가자고 하니 왜 벌써 가냐고 되물었다.
아빠와 나는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
새로운 공간에서 겨울 바람을 온 몸으로 느꼈기에, 충분했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나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다. 시간이 아주 많다. 유럽의 카페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전혀 죄책감 없이 아주 오랫동안 빈둥거리는 것. 위대한 철학자들이 대부분 유럽 출신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들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생각이 마음대로 떠돌아다니게 내버려 두었다.’
<행복의 지도> 에릭 와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