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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마음 달랠 길 없어서

by 유자와 모과
깜박깜박.jpg


“아버지, 이거 복잡할 거 하나도 없으니까 겁내지 마시구요.

충전이 되면 지 혼자 알아서 청소도 하고.”


딸은 아버지에게 로봇 청소기 사용법을 설명 중이다.

80대 할아버지는 무심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는다.

이제 막 치매가 시작된 할아버지.

아내는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는 혼자 산다.


어느 날 밖에 외출했다 돌아온 할아버지는 현관 비밀번호를 까먹는다.

열쇠 수리기사를 불러 간신히 집 안으로 들어온 할아버지.

삶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로봇 청소기가 다가온다.

깜박깜박 불빛을 내며 할아버지 곁을 맴도는 청소기.

할아버지는 청소기에게 말을 건다.


“너 이름은 뭐니?”


임다슬 감독이 만든 단편영화 <깜빡깜빡>은 이렇게 시작한다.

로봇 청소기 때문에 울게 될 줄은 몰랐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

돌봄 노동을 해야 하는 자식도 돌봐야 할 자식이 있다.

아무도 없는 할아버지에게 로봇은 친구가 되어준다.


마지막 장면은 아프다.

할아버지와 로봇은 어디로 가야할까?

직접 보기를 권한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길이는 24분 47초.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스페셜 위크 행사로 무료로 볼 수 있다.

인디그라운드에 접속해 회원 가입만 하면 된다.

1차는 1월26일부터 2월4일까지, 2차는 2월 5일부터 14일까지다.

<깜빡깜빡>은 1차 상영작이라 4일까지 볼 수 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보고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막막해지는 마음 달랠 길 없다.

잘해야겠다고.

작년에도 100번쯤 생각했다.

올해는 몇 번이나 다짐할까.

부드럽고 다정한 딸이 되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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