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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Feb 05. 2024

취미가 창작이 된다

독서, 글쓰기, 장기, 한지 공예, 수채화, 연극 뮤지컬 감상, 탁구, 수영, 자전거, 피아노, 우클렐레, 요가, 식물 키우기, 등산, 여행, 다도, 스키. 

한 때 열정을 가졌던 취미들입니다. 

지금까지 즐기는 항목도 있지요. 


그 중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앞으로도 지속할 취미는 독서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으며 또 다른 세계가 책 안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뒤로 꾸준히 소설과 시집을 읽었습니다. 


 대학생이 되며 자유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취미도 확장되어 독서 시간이 늘지는 않았습니다. 

책은 한 달에 두세 권 읽었는데 거의 문학 분야의 책이었지요. 

10년이 지나니 국내외 작가들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겠더군요. 


서른 살이 되자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 당시 3년 정도 집중해서 책을 읽은 시기가 있습니다. 

그때는 하루에 한 권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심리학에 관심이 생기면 도서관에 있는 심리학책을 모두 빌렸습니다. 

지하철에서 읽고 잠자기 전에 읽었습니다.

 혼자 밥을 먹으며 읽고 길을 걸으며 읽었습니다. 

왜냐고요? 독서가 재밌었거든요.


 몇 년 간 책만 읽고 나니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머릿속에 책이 가득하니 밖으로 표출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 겁니다.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도 쓰고 단편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썼습니다. 

글을 써보면 머릿속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게 됩니다. 

문장은 어색하고 논지는 거칠었지만 썼습니다. 

연습하면 나아질 거라 확신했기에 조급해 하지 않았습니다. 

수년 동안 틈틈이 글을 쓰며 언젠가는 내 책을 출판할 거라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만 책을 읽다 취미가 깊어지고 확장되니 어쩌면 나도 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도 창조를 하고 싶어. 근데 좋아하거나 관심 가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쩌면 좋지?’ 

그런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림을 배우고 싶은 욕구가 불쑥 들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기초 드로잉 책들을 빌려 왔습니다. 

책에서 하라는 대로 선긋기를 하고 도형을 그렸습니다. 

기본을 다진 후 문화센터에서 수채화 수업을 들으며 그림을 그렸는데요. 

일 년쯤 지나니 흥미가 떨어지더군요. 

어떻게 구도를 잡는지, 어떻게 사물의 질감을 표현하는지, 이 물감과 저 물감을 조합하면 어떤 색이 나오는지 그럭저럭 알게 되니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습니다. 


 수업을 그만두니 드로잉 펜, 스케치북, 붓, 팔레트, 수채화 물감, 색연필이 서랍 안에 가득 쌓였습니다. 

그게 너무 아깝더라고요. 

남편을 설득했습니다. 


“저 수채화 물감이 얼마인지 알아? 수채화 종이 한 장에 얼마인지 맞춰봐. 

중고로 팔려고 하는데. 조금 아깝긴 하다. 혹시 그림 한 번 배워볼래? 

책 보면서 따라 하면 혼자서도 그릴 수 있어. 자기는 꼼꼼한 성격이라 드로잉과 잘 맞을 것 같아.” 


 남편은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프로그래머인 남편은 그림에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었지만 결국 제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값비싼 미술용품이 헐값에 팔리는 걸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편은 그림을 그릴 거라고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그림 참 못 그린다”는 엄마 말을 들은 후 붓을 놓았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창조적 능력을 표현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2015년 7월 10일, 남편은 B4 연필을 손에 쥐고 회사 책상에 놓인 전화기 한 대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손은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수첩을 찾아보니 그림 아래 이렇게 적어 놨네요. 

‘일단 시작에 의미를 두자.’ 


7월 11일에는 집에 있는 메모꽂이를 그린 후 적었습니다. 

‘갈수록 태산.’ 


7월 12일에는 맥도날드를 방문했나 봅니다. 

쟁반에 담긴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볼펜으로 그린 후 느낌을 적었습니다. 

‘먹는 게 훨씬 쉽다.’ 


남편은 제가 쓰다 만 미술용품을 소진하기 위해 비자발적으로 그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그림의 매력에 빠지게 됩니다. 

전혀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려보니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오거든요. 

어라? 좀 더 노력하면 나아지겠는데 하는 마음이 드는 겁니다. 

그리다보니 자신이 그림 그리는 행위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고요. 


남편은 회사일이 바빠 그림을 그리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집중해서 그림을 그렸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그때는 늦게 퇴근해도 그림 한 장을 그리고 자더군요. 꾸벅꾸벅 졸면서도 그렸습니다. 

그 시기가 지난 후 남편의 그림 실력이 향상되었고 스스로도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남편은 누군가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볼까봐 두려워했습니다. 

내공을 쌓은 후로는 카페나 여행지에서 수첩을 꺼내 드로잉을 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이지요. 

그림 공모전에 도전 하고 떨어져도 개의치 않습니다. 또 도전하면 되니까요. 


만약 남편에게 그림을 권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남편은 자신이 그리는 행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예술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멀리 있는 분야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붓을 들고 이젤 앞에 앉아 있는 화가가 되어 버린 겁니다. 


전하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일들이 끝없이 생겨나는 게 인생입니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 이것저것 시도해 보세요.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게 나에게 맞는지 안 맞는지 모릅니다.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얼떨결에 시작한 취미가 좋아지면 더 알고 싶어집니다. 

더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면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표현하는 순간 창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창조를 시작하면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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