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의 시간

by 유자와 모과

나와 모과는 여행 계획을 세울 때 꼭 가보고 싶은 장소 몇 개만 선정한 후 나머지는 그날의 컨디션과 날씨에 따라 움직인다.

어느 도시건 반드시 일정에 넣는 건 미술관밖에 없다.

나머지는 되는대로 즐기는 편이다.


걷다가 공원이 나오면 그냥 거기에 앉아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그림을 그린다.

우리는 공원을 좋아한다.

공원은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입장료도 없다.

탁 트인 잔디와 높게 자란 나무들, 작은 호수와 여기 저기 놓인 의자, 뛰어노는 아이들, 깜찍한 강아지, 마음에 들지 않는 풍경이 하나도 없다.

공원은 도심 속 오아시스다.


우연히 거리 공연을 만나면 끝날 때까지 몇 시간이고 지켜본다.

집에서는 주중 주말 상관없이 성실하게 하루를 쌓아가지만 여행 할 때만큼은 느긋한 마음을 갖는다.

나는 이를 칵테일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평소에는 마시지 않는 칵테일을 여행만 가면 자주 마시기 때문이다.

칵테일과 느림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대부분의 호텔, 리조트, 비스트로는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에 해피아워를 갖는다.

특정 시간대에 특정 술을 대폭 할인해서 판매하니 손님에게 행복한 시간이 될 거라는 뜻이겠지.

나는 항상 칵테일을 선택한다.


술을 안 먹는 모과도 달콤한 칵테일 한 잔쯤은 마실 수 있다.

보통 칵테일은 1+1 행사를 하거나 50% 할인이다.

어느 모로 보나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칵테일도 만드는 직원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 들어가는 재료가 단순한 칵테일을 선택하는 게 좋다.

메리 블러드 같은 칵테일은 잘못 시키면 대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


우리는 여행을 하다 해피아워가 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발견하면 다음 일정을 뒤로 미루고 칵테일의 시간을 즐긴다.

예약한 리조트에 작은 수영장이 딸려 있다면 그곳이 바로 우리 여행지가 된다.


호이안에서 리버타운이라는 작은 호텔에 머문 적이 있다.

비즈니스 호텔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도착하니 아담한 수영장이 두 개나 있었다.

해피 아워 시간을 확인한 후 짐을 풀자마자 칵테일을 즐겼다.


라탄 의자에 앉아 모히토를 시킨 후 물놀이 하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모히토를 한 입 머금은 순간 이곳은 구색만 갖춘 바(bar)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부터는 안전하게 진토닉이나 마티니를 주문했다.

다음날도 올드타운 구경을 하다 해피 아워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숙소로 돌아와 칵테일을 마셨다.

며칠 후 짐을 싸서 다낭으로 이동했다.


다낭에서는 리조트에 머물렀다.

논누억 프라이빗 비치를 품은 멜리아 다낭이라는 곳이었다.

리조트 여기저기에 작은 수영장이 있었다.

우리가 관광할 장소였다.

우리는 리조트를 떠나지 않았다.


아침마다 나는 바닷가를 산책하고 모과는 해안가에서 작은 게를 잡았다.

해가 뜨거워지면 방으로 돌아와 스도쿠를 풀거나 책을 읽었다.

점심은 리조트 안에 있는 식당 중 한 곳에서 해결했다.

나무랄 데 없는 맛이었다.


해피아워가 시작되면 바(bar)가 있는 해변가 수영장에 자리를 잡았다.

썬배드에 누워 마가리타를 주문했다. 마시고 또 마시고.

다음날도 어김없이 오후가 되면 썬배드에 누워 칵테일을 마셨다. 마시고 또 마시고.


리조트 직원은 칵테일 주문을 받으러 올 때마다 모과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다.

나중에는 여러 직원들이 함께 서서 속닥거렸다. 그림 평가를 하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칵테일만 준다면 만족했다.


7박 8일 여행 동안 우리는 매일 해피아워를 즐겼다.

게으름의 극치였다.

일상에서는 어림도 없지.

여행을 떠나야만 칵테일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심리적으로 느슨해지기 때문일까.


크루즈에도 해피아워 시간이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

칵테일의 시간을 즐길 때가 왔다.

바다 위에서 마시는 칵테일은 더 맛있을까?

어지럽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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