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언어

by 유자와 모과

여행 할 때 어려운 부분은 언어다.

세계 공용어라 할 수 있는 영어라도 잘하면 좋으련만 평소 쓰지 않는 영어를 일 년에 한두 번 말하려니 쉽지 않다.

나는 손짓 발짓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려 노력하는 편이다.

모과는 외국만 나가면 돌하르방으로 변해버린다.

모과는 영어 단어도 많이 알고 독해력도 좋은데 정작 외국인이 말을 걸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단다.

모과는 누가 말을 걸면 고개를 끄덕이며 어떤 질문이든 예스 라고 대답한다.


베를린에서 프랑크프루트로 가기 위해 역사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먹을 점심은 햄버거로 정했다.

전날 미술관 몇 군데를 무리하게 둘러보느라 지친 상태였다.

모과는 대합실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기대어 있는 나를 보더니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났다.

햄버거를 사오겠다는 거다. 제대로 주문할 수 있을지 걱정 되었다.

-그냥 내가 갈께.

-아니야.

모과는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했다.

한다는데 말릴 수도 없고. 치즈버거 같은 기본으로 사오라고 부탁했다.


모과는 단호하게 멀어져갔다.

떠난 님은 오지 않았다.

비스듬히 누워 있던 나는 어느덧 정자세로 앉았다.

주위를 둘러봤다.

소매치기라도 당한 걸까? 길을 잃었나? 무슨 오해를 받아 경찰서에 끌려갔나?

머릿속 시나리오는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기차 탑승 시간이 다가왔다.

눈물이 나오려는데 모과가 저쪽에서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기뻐할 새도 없이 짐을 챙겨 급히 기차에 올랐다.


“왜 늦었어. 걱정 했잖아.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점원이 내 말을 못 알아들어서 주문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

“왜?”

“버거킹에 들어가서 치즈버거 세트(cheeseburger set) 했거든. 점원이 메뉴(menu)? 라고 묻는 거야.

치즈버거 세트 하니까 점원이 또 메뉴? 라고 하는 거야.

당황해서 치 즈 버 거 세 트라고 천천히 말했는데 점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

그러더니 다시 뭐라뭐라 질문하는 거야.

물어볼 때마다 예스 했더니 햄버거 주던데?

다행이지. 치즈버거 맞을 거야. 식기 전에 먹자.”


모과는 당당하게 햄버거 포장지를 벗겼다.

햄버거는 두툼했다.

한 입 물었다.

와. 버거킹이 이렇게 맛있었나?

환상적인 맛이다.

뭐가 들어간 거지?


햄버거 빵을 들춰보았다.

빵 안에 넣을 수 있는 건 모조리 넣은 것 같다.

영수증을 훑어보았다.

영수증에는 기본 치즈버거에 치즈 한 장 더, 베이컨 두 장, 야채, 소스, 패티가 추가된 금액이 적혀 있었다.

콜라도 사이즈 업이 되어 있었다.

감자튀김은 어니언링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중에야 우리는 이유를 알았다.

모과는 점원 머리 위에 있는 치즈버거 세트 그림을 보며 햄버거를 주문했다.

독일에서는 세트를 메뉴라 부른다.

점원은 남편에게 치즈버거 메뉴를 먹을 거냐고 확인 차 물어봤다.

모과는 점원이 자기 말을 못 들은 줄 알고 치즈버거 세트를 먹을 거라고 다시 대답했다.

두 사람은 몇 번 실랑이를 벌였다.


포기한 직원은 기본 치즈버거를 선택한 후 베이컨 추가할래? 치즈 추가할래? 야채 추가할래? 콜라 사이즈 업 할래? 감자 칩 돈 조금 더 내면 다른 걸로 바꿀 수 있는데 그럴래? 라고 물어봤다.

질문 폭탄에 모과는 당황했다.

뭔지도 모르면서 예스라고 대답했다. 예스. 예스. 예스.

여행을 하다보면 스테이크만큼 비싼 햄버거를 먹기도 한다.

무사히 기차를 탔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햄버거를 꼭꼭 씹어 먹었다.

배는 빵빵하게 부르더라.


일본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나라다.

일본어를 몰라도 한자를 알면 도움이 된다.

모과는 어릴 적 서당에서 천자문을 뗐다.

60년대 같은 이야기지만 90년대다.

천자문 떼는 날은 그 집 부모가 떡을 돌렸다.

제천 시골에도 못보던 서당이 대전 광역시에 있었다는 게 놀랍다.


전문 지식을 쌓아서인지 모과는 또래에 비해 한자를 많이 안다.

나는 일본 여행을 할 때마다 일본어와 한자가 적힌 메뉴를 보며 어떤 음식인지 해석이 되지 않아 좌절한다.

그림을 봐도 도통 모르겠다.

내 심정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영화에서 주인공 샬롯은 도쿄에 머무르는 중이다.

미국인인 그녀가 식당에서 똑같이 생긴 샤브샤브 그림을 보며 대체 뭐가 다른 거냐며 짜증을 낼 때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이해했다.


모과와 함께라면 일본 여행은 누워서 기지개 펴는 것만큼 쉽다.

그가 한자를 모조리 풀이하니까.

모과는 일본만 가면 키가 한 뼘은 더 커진다.

이번에는 몇 센티가 더 자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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