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하면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춘천 가서 닭갈비랑 막국수 먹고 올까? 대천에서 조개구이에 매화수 한 잔 어때?
여수 가서 보리굴비 먹자. 이천 쌀밥 먹으러 갈까?
포천이면 이동갈비지. 제주도에 왔으니 고기국수를 먹어야겠지.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은 평소보다 맛있게 느껴진다.
음식 위에 설레임이라는 양념이 톡톡 얹어지기 때문이다. 마법 가루다.
친구 은진이와 떠난 상하이 여행에서 두리안의 참맛을 맛보았다.
뜻밖이었다. 설레임 양념이 통했던 걸까?
예전에 동남아시아 여행을 하며 말린 두리안을 몇 번 먹었다.
별로였다.
그 후로 두리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두리안은 냄새가 고약하다더니 맛도 없구나.
상하이 시내를 구경하다보니 두리안을 파는 과일 가게가 종종 눈에 들어왔다.
싱싱한 두리안 과육이 일회용 용기에 담겨 있었다.
두리안을 바로 손질해 무게대로 가격을 붙여 파는 형태였다.
생 두리안은 맛있으려나?
중국 사람들이 가게 옆에 서서 두리안을 먹는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다음날 용기를 내어 과일 가게로 갔다.
과육이 두세 개 들어있는 걸 선택했는데도 가격이 꽤 나갔다.
친구와 가게 옆에 서서 투명 랩을 벗기고 이쑤시개로 두리안을 찍어 입안에 넣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풍미가 가득 찼다.
아보카도 질감과 비슷했지만 과즙이 좀 더 많았다.
느끼하면서도 고소하고 고소하면서도 달콤했다.
두리안이 이토록 맛있는 과일이었다니.
우리는 한 팩을 더 샀다.
길가에 서서 감탄하며 먹었다.
다음 날도 두리안 가게를 들렸다. 깊고 풍부한 맛이었다.
하나 더 먹자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자꾸 먹으니 느끼하단다.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욕심 부리지 말자며 포기했는데 지금까지 아쉬움이 남는 걸 보면 혼자라도 한 번 더 먹을 걸 그랬다.
여행지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은 음식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걸 보면 정신적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듯하다.
파리에서 꼬꼬뱅을 먹으러 간 적이 있다.
모과와 나, 그리고 파리 민박집에서 사귄 친구 두 명과 함께였다.
꼬꼬뱅은 한국의 된장찌개처럼 프랑스 가정식 요리다.
생닭과 야채 위에 와인을 붓고 오랜 시간 졸이면 된다.
전통 음식을 파는 유서 깊은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들어서자마자 귀족이 된 기분이었다.
메뉴판은 프랑스어였고 괄호 안에 영어가 적혀 있었다.
꼬꼬뱅 가격이 꽤 비쌌기에 다른 음식은 저렴한 걸 골라야 했다.
카프 헤드(calf head)라 적힌 음식이 그나마 저렴했다.
송아지 머리이니 편육 같은 종류일 거라 추정했다.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른 메뉴는 너무 비쌌다.
물도 공짜가 아니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넓고 둥근 그릇에 순대처럼 생긴 물컹한 무언가가 둘둘 감겨 있었다.
젤리처럼 투명하고 흐물흐물한 형태가 대뇌와 비슷해 보였다.
모두 침묵.
모과가 용감하게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카프 헤드를 한 점 잘라 입에 넣었다.
모과 침묵.
그 날 카프 헤드를 몇 점이라도 먹은 건 남편뿐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맛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비즈니스 호텔에 머물렀다.
1층에 간단하게 식사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렸다.
냉동 피자 한판을 샀는데 스페인어를 몰라 대충 포장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골랐다.
피자 토핑은 다 거기서 거기니까.
숙소로 돌아와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따끈따끈한 피자에서는 피자다운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이상했다. 불길한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유통기한이 지난 걸까?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비린내가 입 안에 확 퍼졌다.
우웩. 마른 생선이 토핑으로 올라간 생선 피자였다.
그림만 보고 고르는 게 아니었는데. 방심했다.
한국에서 파는 날치 알이 든 피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건 확실히 한국 입맛에 맞춘 거다.
스페인 피자는 농축된 생선 비린내가 풍겨 나왔다.
한입도 제대로 못 먹고 그대로 쓰레기통에 반납했다.
이번 여행은 음식을 위한 여행이 될 것 같다.
크루즈에서 뭐가 나올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생각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도쿄에서는 뭘 먹을까?
도쿄를 대표하는 세 가지 음식은 스시, 소바, 덴뿌라다.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싱싱한 해산물을 실시간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스시는 밥 위에 날생선 등의 재료를 올린 요리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스시는 초를 친 밥을 손으로 쥐고 생선과 와사비를 올려 손님에게 건네주는 ‘니기리즈시’ 스시다.
초밥이라고도 한다.
소바는 메밀로 만든 국수다.
12월 31일에는 한 해를 넘기는 소바를 먹는다.
잘 끊어지는 소바 면처럼 그해의 나쁜 일을 끊어내고 기다란 소바 면처럼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다. 이사를 하면 한국은 시루떡을 돌리지만 일본은 소바를 나눈다.
오래오래 잘 부탁한다는 의미이다.
소바를 끓여서 주는 건 아니고 생면이나 건면을 준비한다.
덴뿌라는 야채나 해산물 따위를 밀가루에 묻혀서 기름에 튀긴 것이다.
기름이 귀했던 옛날에는 덴뿌라가 상류층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에도시대 중기인 18세기부터 대중에게 확산되어 지금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덴뿌라 라는 이름은 포르투갈 언어인 템페로(양념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나는 날 생선을 얹은 스시는 손도 못 대지만 오이초밥은 무척 좋아한다.
소바와 덴뿌라는 없어서 못 먹는다.
도쿄는 내 입맛에 꼭 맞는 식당들이 충분히 많아 오히려 뭘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