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빠 차를 끌고 다니지만 몇 년 전까지는 버스나 기차로 국내 여행을 갔다.
큰 도시는 지하철도 있고 시내버스도 자주 다닌다.
소도시에서는 버스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한두 시간 걸어서 목적지로 이동하는 게 더 빠르기도 하다.
강화도 여행을 떠났던 어느 날이었다.
해든 뮤지엄을 가려 했으나 거기까지 들어가는 버스가 없었다.
한 시간 넘게 논길을 걸었다. 한여름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미술관에 도착하니 관장님께서 걸어 왔냐며 깜짝 놀라셨다.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커다란 츄파춥스 두 개를 건네주었다.
우리는 사탕을 입에 물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한 두 시간 걸어도 도착하지 못하는 거리라면 어쩔 수 없이 시내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어느 이른 봄 변산반도로 여행을 떠났다.
전날 도착한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채석강에서부터 모항까지 부안 마실길 5코스와 6코스로 불리는 둘레길을 걸었다.
문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모항에 도착하니 해가 머리 위에 있었다.
점심을 먹고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고속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시간표를 보니 모항을 지나가는 시내버스는 딱 한 대였다.
그것도 하루에 네 번만 지나간다.
자가용 없이는 국내 여행은 꿈도 꾸지 말라고 경고하는 걸까?
시간표가 정확하다면 20분 후 두 번째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모항을 지나는 버스가 한 대 밖에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반대쪽 정류장에 가서 시간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지.
신호등 쪽으로 걸어가는데 멀리서 버스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자기야, 저 버스가 혹시 하루에 네 번 지나가는 버스 아닐까?”
“글쎄.”
“가서 기사님한테 고속터미널로 가는 버스 맞냐고 물어봐.”
“아니라고 하면 어떡해. 버스 도착하려면 20분이나 남았는데 설마 저 버스겠어? 다른 정류장에 서는 버스겠지.”
“여기는 시골이잖아. 버스 시간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빨리 가서 물어봐.”
“내가?”
이런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버스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 기사는 버스정류장에서 다섯 발자국 떨어져 있는 우리를 보며 잠깐 주춤하더니 곧 속도를 올려 지나가 버렸다.
20분을 기다린 후 우리는 그 버스가 두 번째 버스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세 번째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두 시간을 정류장에서 기다렸다.
모과는 안절부절못하며 정류장 근처를 뱅뱅 돌았다.
택시를 부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택시는 사치였다. 침묵만이 우리를 감쌌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간신히 버스를 탔다.
터미널에서 선운사로 가는 고창행 시외버스를 타지 못했더라면 그 여행은 새드 엔딩으로 막을 내렸을 거다.
마을버스 기사님의 배려 덕분에 특별해진 여행도 있었다.
대학원 친구였던 은경 언니와 한겨울에 여행을 떠났다.
전날 운주사를 둘러보고 다음날 아침 김제 역에서 금산사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은 원평 장터에서 장을 보고 올라탄 할머니들로 가득했다.
버스가 출발한지 5분쯤 지났을까 할머니 한 분이 소리쳤다.
“아이구, 이 버스 00로 가는 게 아닌겨?”
“이 버스는 금산사로 가는디, 잘못 탔구먼”
“어쩐지, 얼굴이 그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아니구먼”
“그럼 어떡할겨.”
“금산사까지 갔다 다시 돌아나와야지. 어쩔겨”
금산사에 도착하자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금산사를 둘러봤다. 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원평 장터에 내렸다.
표지판을 보니 수류성당까지 6km라고 적혀 있었다.
순례자의 길이었다. 오후 4시.
우리는 시골 하천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축사 두 곳을 지나고 시골집을 지났다. 개들이 멍멍 짖었다.
가는 길이 맞는지 불안해 질 때마다 달팽이 모양의 표지판이 나타나 우리를 달래주었다.
수류 성당에 도착했다.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했다.
성당 근처 정류장 벽에 붙어있는 버스 시간표는 흡사 암호처럼 보였다. 해독이 어려웠다.
밖은 점점 쌀쌀해졌다. 주변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저쪽에서 버스가 달려왔다. 우리는 기사님을 부르며 뛰어갔다.
버스에 올라타니 기사님이 시동을 끄며 말했다.
“30분 뒤에나 출발하는데 왜 벌써부터 기다리는겨. 버스 안은 추우니께 마을 회관에 들어가 있소. 나도 거기서 저녁 먹고 출발할건디.”
우리는 잠시 고민한 뒤 기사님을 따라 상화마을 경로당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다섯 분이 앉은뱅이 밥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드시고 계셨다.
오이생채, 꽈리고추, 돼지고기 김치찌개가 놓여 있었다.
기사님은 괜찮다고 사양하는 우리를 옆에 앉혔다. 할머니 한분이 밥그릇을 들이밀었다.
우리는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저녁을 먹었다.
버스 기사님은 우리를 김제역에 내려주었고 시간에 맞춰 서울 행 기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경찰차도 타봤다. 난범 언니와 구례 여행을 떠났을 때다.
한화콘도에 짐을 풀고 다음날 아침 남원으로 향했다.
남원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주천면사무소에 내렸다.
지리산 둘레길 1코스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평평한 길이었다.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산을 넘고 있었다.
간신히 산을 타고 내려와 이름 모를 마을에 도착했다.
카카오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마찬가지.
어쩌다 1톤 트럭만 지나갈 뿐이었다.
구례로 가는 시내버스 막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 멀리 경찰차가 보였다. 우리는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웠다.
체면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경찰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경찰은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분과는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경찰차를 탔고 허허벌판인 도로 중앙에서 택시 한 대와 조우했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우리는 시내버스 막차에 간신히 올라 탈 수 있었다.
크루즈는 탑승만 하면 끝이다.
교통에 대한 모든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기에 벌써부터 마음이 편하다.
자고 일어나면 나가사키 항구에 내려주고, 또 자고 일어나면 요코하마 항구에 내려준다.
어르신들이 크루즈 여행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가 교통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울렁거림을 참지 않아도 되고 기차를 놓쳐 망연자실하게 서 있지 않아도 된다.
좁은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있을 필요도 없다.
화장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크루즈 여행에서는 이동시간이 곧 휴식시간이 된다.
살다보니 편하게 여행할 날도 오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