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건을 소중히 다룬다. 2천 원짜리 바셀린 한 통이라도 끝까지 사용하고 머리 끈 하나도 꼭 필요할 때 구입한다. 티셔츠 한 장도 손 빨래를 해서 옷감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사람들은 우리 집에 오면 이사 가냐고 묻는다.
엄마는 집에 올 때마다 말한다. “너희 집 보면 웃음밖에 안 나와. 넌 조선 시대에 사니?”
예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미니멀보다는 맥시멀에 가까울 정도였는데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 여행지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 때문이다.
10년 전, 기차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나와 모과는 브뤼셀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동 중이었다. 우리는 캐리어를 끄는 대신 각각 30리터 배낭을 메었다.
지금이라면 소중한 어깨와 척추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무리한 짓은 하지 않겠지만 그때만 해도 젊었다.
기차를 타기 전 ATM기에서 유로로 100만원을 찾아 남편 배낭 밑바닥에 넣어 두었다.
기차 안은 한적했다. 창밖 풍경은 목가적이었다.
앞쪽 문이 열렸다. 구렛나루를 한 우람한 체격의 젊은 외국 남성 한명이 어깨에 백팩 하나를 들쳐 매고 슬렁슬렁 다가왔다.
그는 우리 옆을 지나다 동전을 와르르 떨어뜨렸다.
한 때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나라에서 온 우리는 발 앞에 떨어진 동전을 열심히 주워 그에게 건넸다.
그 남자는 우리가 의자 아래를 살피며 동전을 줍는 사이 천장에 있는 짐 칸에서 배낭 하나를 잽싸게 꺼냈다. 짐칸에는 파랑 배낭과 빨강 배낭이 있었다.
파랑색엔 여행지에서 입고 다닌 땀에 젖은 옷가지를, 빨강색에는 현금과 귀중품을 넣었다. 유능한 도둑이니 어떤 색깔을 선택해야 할지 단번에 느낌이 왔을 거다.
그는 우리가 건네주는 동전까지 살뜰히 챙긴 후 땡큐를 외치고 다른 칸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그에게 도움을 주어 뿌듯했다. 한참을 더 가서야 가방 하나가 사라진 걸 알았다.
가방 색깔을 확인한 후 다음 역에 내려 허겁지겁 근처 경찰서를 찾았다.
벨기에 경찰관은 ‘동전 뿌리고 가방 훔치기’가 흔한 수법이라며 서툰 영어로 우리를 위로했다.
가방 안에는 현금 뿐 아니라 새로 산 핸드백, 각종 선물, 여행 사진이 가득 담긴 USB, 여행 루트가 담긴 GPS가 들어 있었기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영리한 도둑이 한쪽 어깨에 둘러매고 있던 백팩도 원래는 다른 사람 거였을까를 궁금해하며 울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분실 신고서를 작성했다. 퉁퉁 부운 눈으로 경찰서를 나와 다시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며 울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할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모과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낙심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다
“괜찮아. 그만 울어. 그렇다고 잃어버린 걸 다시 찾을 수 없잖아.”
모과는 다시 기차에 오르자마자 꾸벅꾸벅 졸았다.
그라인더에 커피콩을 천천히 갈 때처럼 낮은 톤으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평온하게 잠든 모과 얼굴을 바라보았다. 놀라웠다.
내 옆에 잠든 이 남자는 대체 누굴까?
돈을 아껴야 한다며 물 한 병 사지 않고 목마름을 참던 사람이 가진 걸 몽땅 잃고도 어떻게 담담할 수 있지? 모과 덕분에 차츰 안정을 찾았다.
한달 정도는 사랑스럽고 비쌌던 나의 핸드백을 떠올릴 때마다 괴로웠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 사건은 우리가 두고두고 얘기하는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다.
그 후로 나는 해외여행을 갈 때 어떤 액세서리도 착용하지 않는다.
비싼 가방이나 전자제품도 가져가지 않는다.
도둑맞아도 크게 마음 아프지 않을 물건들로만 짐을 꾸린다.
여행지에서 소유물을 잃어버린 후 관점이 달라졌다.
물질에 대한 소유욕도 많이 사라졌다.
특히 핸드백이나 액세서리를 갖고 싶은 마음은 깨끗이 사라졌다.
어차피 사도 잃어버리면 끝인 걸 하는 생각이 든다.
‘무소유’에 관한 씨앗 한 알이 도둑맞은 사건 이후로 마음속에 단단히 심겨졌고, 몇 년 후 미니멀 라이프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싹이 텄다.
그 후로부터는 단순한 삶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다.
도둑님, 그때 빨간 가방을 훔쳐가 줘서 감사해요.
절약하며 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번 크루즈 여행 때는 상세한 여행기 작성을 위해 태블릿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된다.
모과에게 의견을 구하니 딱 잘라 대답한다.
“먹고 놀고 자느라 글 쓸 시간 없을 거야. 한두 번도 아니잖아. 가져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