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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옥수수빵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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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옥수수빵 만들었는데 드셔보세요.”

“이거 먹으니 어릴 적 학교에서 먹던 옥수수빵 생각나네. 점심시간마다 큰 통으로 쪄서 나눠줬거든. 그거랑 맛이 비슷해.”


그 시절 옥수수빵 맛이 난다고? 이번엔 성공이다.

나와 남편은 눈빛을 주고받는다.


옥수수빵은 흑인의 소울푸드다.

소울 푸드는 남부 흑인 노예들이 북부에서 고생하며 살면서 만들어 먹던 고향 음식을 일컫는다.

프라이드 치킨, 잠발라야, 콘브레드 등이 있다.

옥수수빵 혹은 옥수수 팬케이크라 불리는 콘브래드는 미국 남부 배경 소설에도 등장한다.

우리 엄마도 어릴 적 먹었던 옥수수빵을 그리워한다.


잉? 엄마 남부 출신이었어?

1960년대,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은 먹을 게 없어 배를 곯아야 했다.

학교에서는 미국에서 원조받은 옥수수를 가루로 분쇄해 분유와 물을 섞은 후 빵을 만들어 학생에게 나눠줬다.

한국 전쟁 후 폐허가 된 나라를 복구하며 자라났던 세대에게 콘브래드는 소울 푸드가 되었다.


엄마가 그 시절 맛보았던 콘브래드가 그립다고 하여 인터넷을 수소문해 옥수수가루를 구한 적이 있다.

거칠게 빻은 옥수수가루였다(콘밀을 사면 된다).

옥수수가루를 넣고 빵을 만들었다.

가루가 그대로 씹혔다.

엄마는 그 맛이 아니라며 아쉬워했다.

몇 번 시도했지만 알갱이가 딱딱해 먹을 수 없었다.

남은 가루는 버렸다.


이번에 남편이 만들어 보겠다며 레시피를 찾다가 콘밀을 사용하려면 하루 물에 불려야 하는 걸 알게 됐다.

망한 이유를 찾았다.

콘밀 대신 옥수수가루를 주문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옥수수가루, 달걀. 통밀. 이스트. 설탕. 우유. 소금. 바닐라 익스트렉. 녹인 버터를 모두 섞은 후 틀에 넣고 170도에 25분 굽는다.

다시 빵을 구워 부모님께 가져갔다.

아빠는 맛을 보더니 그때 옥수수빵은 부드럽지 않다고, 이게 훨씬 맛있다고 했다.

엄마는 맛을 보더니 설탕 넣었니? 했다.

실패다.

콘밀을 사서 하루 물에 불려 만들었어야 했다.


엄마가 그리워하는 음식이 몇몇 있다.

젊을 때 맛본 을지면옥 평양냉면도 그중 하나다.

누가 사줘서 딱 한번 먹어봤다는 그 냉면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엄마만큼 절박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기에 그 정도로 그리운 음식은 없다.

을지면옥에 한번 가자고 했으나 어영부영하는 사이 몇 년이 흘렀다.

2022년 그 주변이 재개발되며 식당은 문을 닫았다.

그때 엄마 손을 끌고 갔어야 했다.

뒤늦은 후회.


부모님이 옛 추억을 더듬을 때 흘려듣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 안에 숨겨진 소망과 그리움을 살펴야 한다.

이제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다.

옥수수빵을 다시 만들어야겠다.

결핍은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는다. 배고픈 사람들이 오로지 음식만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는 어떤 종류의 결핍을 경험하든 간에 그때마다 그 결핍에 매몰되고 만다. 아울러 정신은 충족되지 않은 필요성을 자동적으로 또 강력하게 지향한다.

<결핍의 경제학> 센딜 멀레이너선, 엘다 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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