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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히아신스의 계절

by 유자와 모과
히아신스꽃.jpg


이맘때쯤 생각나는 꽃이 있다.

히아신스.


히아킨토스라는 청년이 있었다.

태양의 신 아폴로와 서풍의 신 제피로스에게 동시에 사랑을 받았다.

히아킨토스는 아폴론에게 마음이 갔다.

질투를 느낀 제피로스는 바람을 일으켜 히아킨토스가 아폴론이 던진 원반에 맞아 죽게 했다.

아폴론은 히아킨토스를 지하세계로 보낼 수 없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다시 꽃으로 태어나게 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얘기다.


초봄은 구근식물 싹이 돋아나는 시기다.

온라인 농장에서 히아신스를 주문했다.

꽃봉오리가 수줍게 잎에 싸여 있었다.

화분을 바꿔주자 이튿날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팝콘이 터지듯 꽃망울이 활짝 펴진다.

꽃대도 쑥쑥 자란다.

꽃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젓가락으로 지지대를 세워준다.

부엌을 오갈 때마다 허리를 구부려 향기를 맡는다.

꽃향기는 꽃 향수와 비할 수 없다.


구근식물은 여러해살이식물이다.

꽃이 지면 꽃대를 자르고 구근을 캐서 신문지에 싼 후 냉장고에 보관하면 된다.

구근의 갈색 겉껍질을 까고 심어야 곰팡이가 덜 생긴다고 한다.

베란다에 화단이 있다면 거기에 알뿌리를 심어주면 된다.

나는 매년 하나씩 주문한다.


6일째 꽃이 피고 있다.

23개 꽃망울이 남아 있다.

잎 안에 숨겨진 꽃대가 하나 더 있다.

나올지 확신할 수는 없다.

영양제를 뿌리고 물을 주며 응원할 뿐이다.


아름다운 존재를 지켜보는 일은 기쁘다.

꽃은 아이처럼 예쁘고 아이처럼 연약하다.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 피는 꽃.

있는 힘껏 중력을 거스르고 자라나는 꽃.


히아신스 꽃향기에 홀려 봄이 왔다가, 올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꽃향기를 맡는다.



꽃신

꽃을 신고 오시는 이

누구십니까?

아, 저만큼

봄님이시군요!

(나태주 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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