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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팬케이크 좋아하세요?

by 유자와 모과
팬케이크.jpg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강남에 있는 교회에 다녔다.

오전 예배가 끝나면 발길은 자연스럽게 (지금은 없어진) 뉴욕 제과로 향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실컷 빵을 먹으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좁은 입구에 줄 서 있는 풍경을 보았다.

아침부터 뭘 먹으려고?


‘버터 핑거 팬케이크’와의 첫 만남이었다.

거기서 처음 맛본 팬케이크는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난 무얼 먹어왔던가.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질감, 입안 가득 퍼지는 버터 풍미. 아찔할 정도로 달콤하던 컴포트. 어마어마한 양. 어마어마한 가격.


서울은 다르구나.

강남 한복판에서 문화? 충격을 느낄 줄이야.

한동안 ‘버터 핑거 팬케이크’에 빠져 살았다.

더 맛있는 팬케이크를 찾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만난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


주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지하철을 탄 후 신사역에서 내렸다.

날은 추웠고 가로수길을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장들도 닫혀 있었다.

팬케이크 집에 아무도 없으면 어쩌지.

걱정하며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이런.

사람들 다 여기 있네.

조금만 늦었으면 대기할 뻔했다.

팬케이크가 나왔다.

소박해 보였다.

따뜻한 메이플 시럽을 얹고 한 입 먹는 순간.

와우.

‘버터 핑거 팬케이크’ 네가 졌다.


‘오리지널 팬케이크’는 입 안에 닿자마자 녹아버렸다.

진정한 팬케이크가 여기 있었다.

종업원이 돌아다니며 커피 잔을 채워 주었다.

서울 곳곳을 떠돌며 맛보았던 팬케이크 중 최고였다.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는 1953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문을 연 이래 60년을 이어오는 아메리칸 팬케이크 레스토랑 체인이다.

언젠가 꼭 현지에서 먹어보리.


팬케이크는 핫케이크라고도 한다.

밀가루 반죽에 설탕과 버터를 섞어 번철이나 프라이팬에 부어 구우면 된다.

집에서 레스토랑 맛을 재현해보려 애를 썼다.

식초와 우유를 넣어 버터밀크도 만들어 보고 버터를 잔뜩 집어넣기도 했다.

소용없었다.

‘버터 핑거 팬케이크’와 ‘오리지널 팬케이크’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반죽을 오랜 시간 숙성해서 만든다는데, 그 방법이 뭘까?

밖에서 사먹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세종문화회관에 새로 입점한 ‘오리지널 팬케이크’를 방문했다.

일찍 온다고 왔으나 20분 대기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팬케이크를 맛보았다.

이런.

그때보다 더 맛있다.

잊고 있었다. 이 놀라운 맛을.


우리집팬케이크.jpg


남편에게 팬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원하는 팬케이크는 어렵지만 수플레 팬케이크는 가능하다고 했다.

‘수플레’는 프랑스어로 ‘불룩해진’ 이라는 뜻이다.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팬케이크라 보면 된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달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한다.

노른자는 포크로 풀어준 후 우유 소금 밀가루와 섞는다.

흰자는 설탕을 부어가며 믹서기로 돌린다. ‘머랭을 친다’고 한다. 레몬즙을 넣는다.

노른자와 머랭을 섞는다.

후라이팬에 반죽을 국자로 떠서 모양을 잡는다.

뚜껑 덮고 3분 굽는다.

뚜껑 열고 다시 반죽을 국자로 떠서 얹는다.

뚜껑 덮고 3분 굽는다.

뚜껑 열고 뒤집는다

뚜껑 덮고 4분 굽는다.

끝.


완성된 수플레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다.

스테인레스 팬에 해서 코팅 팬만큼 매끄럽게 뒤집는 건 실패다.

구름 빵처럼 가볍고 폭식폭신하다.

계란빵 맛이 난다.

혼자 세 개를 다 먹어도 허전한 기분이 든다.

완전 머랭 뻥케이크다.


됐고 우리 동네 팬케이크나 먹으러 가자.

내부가 좁아 다닥다닥 앉아야 한다.

여기만의 팬케이크 맛이 있다.

더 건강한 맛?

이 집도 숨겨둔 맛이 있다.

팬케이크는 아니다.


토마토 살사다.

오믈렛 위에 올라간 살사가 정말 맛있다.

고수가 각종 양념과 어우러져 눈이 번쩍 뜨인다.

이제 팬케이크에서 빠져나올 때가 됐다.

토마토 살사를 만들어야겠다.

새콤달콤 봄이 왔으니까.


음식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뭘까?

요리사 실력? 분위기? 좋은 재료? 깨끗한 공간? 친절한 서비스?

나는 함께 식사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함부로 식사 약속을 잡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그럭저럭한 음식도 맛있어진다.

불편한 사람과 함께 하면 맛있는 음식도 그럭저럭해진다.

오묘하고도 신비한 마음의 세계.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실상 마음과 몸, 두뇌가 함께 결합되어 있고, 앞으로 백만 년이나 지나면 모를까 각각의 칸막이 속에 격리 수용된 것이 아니기에, 훌륭한 저녁 식사는 훌륭한 대화를 나누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인이지요. 저녁 식사를 잘 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할 수 없고 사랑도 잘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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