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기적의 시작>을 보고 싶다고 했다.
수원 스타필드 상영 시간을 찾아보니 오전 10시 15분. 한 타임밖에 없다.
부모님을 모시고 스타필드로 갔다.
전날 저녁 밴드연습이 있었고 새벽에는 교회에 다녀와 피곤했다.
나는 카페에서 쉬기로 했다.
오전 10시. 별마당 도서관 옆 카페로 간다.
손님은 없다.
럼 배럴 커피가 눈에 띈다.
럼이 들어있던 오크통에 생두를 넣어 향을 입혔다고 적혀있다.
카페 시그니처 커피다.
가격은 6500원.
집에서 마시려고 구입하는 원두 100g 가격이 그 정도다.
10번 내릴 수 있는 양이다.
공간을 사는 값이니 따지지 말자.
한적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특별한 향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가는 사람을 구경한다.
일부러 책을 챙기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고 싶어서였다.
5분쯤 지나자 후회가 된다.
책 가져올걸.
시간이 많아진 기분이다.
주변을 둘러본다.
직원 한 명이 서가에 배치된 책의 먼지를 닦고 있다.
유일하게 아이들이 책을 뒤적거리거나 읽고 있다.
가족 혹은 친구와 함께 온 사람들이 서로 사진을 찍고 있다.
카페로 들어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신경 써서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는 게 즐겁다.
개성 강하고 스타일리시한 사람에게는 저절로 눈길이 간다.
그들은 도시 산책자다.
벤야민은 도시를 가로지르며 군중과 풍경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도시 산책자’라고 불렀다.
도시라는 근대적 공간이 나타나며 새로운 주체가 탄생한 것이다.
도시 산책자는 자신의 개성에 맞춰 옷을 입고 느긋하게 걸어 다님으로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도시 산책자는 목적없이 걷는다.
가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멈춰 서고, 즉석에서 마음이 동해 물건을 구입한다.
카페에 앉아 몽상에 빠진 사람도 도시 산책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걷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건 어렵다.
서점이나 가야겠다.
산책자는 느릿느릿 빈둥대며 걸어다닌다.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현대적 삶의 리듬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 있다.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그램 질로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