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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13. 2024

나만의 공간이 있는가?

창작 활동을 하려면 공간이 필요합니다. 

작업실이라 하면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대부분은 방 한 칸만 있으면 작업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작업 공간은 집입니다. 

그중에서도 글을 쓰는 장소는 거실로 정했습니다. 

꽉 막힌 공간보다는 커다란 창문이 있고 트인 곳을 선호하다보니 거실이 작업실이 되었습니다. 

거실 중앙에는 호두나무로 만든 4인용 식탁과 의자 두 개가 있습니다. 

식탁 옆에는 둥근 사이드 테이블을 놓았습니다. 

한쪽 벽에는 4인용 소파, 디지털 피아노가 있습니다. 

맞은편 벽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창문 근처에 15개의 화분이 있습니다. 


주로 오전에 소파를 등지고 식탁에 앉아 식물을 보며 글을 씁니다. 

식탁에서 밥도 먹고 책도 읽습니다.

작업실이 작고 보잘 것 없어도 그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자연으로부터 온 물질이 있으면 공간에 힘이 생깁니다. 

작업실을 아름답게 꾸미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물 컵에 꽃은 꽃 한 송이, 손수건 위에 놓은 솔방울, 냇가에서 주운 돌멩이, 산속에 버려진 나뭇가지, 헝겊에 뿌린 허브 오일 한 방울. 작은 소품만으로도 에너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남편의 작업 공간도 거실입니다. 

빈 방이 있지만 거실을 작업실로 만든 건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 위해서입니다. 

남편이 퇴근해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얼굴 볼 시간이 없기에 거실을 공동 작업실로 만들었습니다.

남편이 테이블 한 켠에서 그림을 그릴 때 저는 그 옆에서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합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작업을 하며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다만 같은 공간을 쓰다 보니 화구 용품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물건이 제자리에 있고 주변이 정갈할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글을 쓸 때는 사이드 테이블에 있는 독서대와 노트북을 식탁으로 옮기고 글을 다 쓰면 제자리에 갖다 둡니다.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유지합니다. 

남편은 언제든 바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모든 도구가 펼쳐져 있길 원합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캔버스, 붓, 물통, 팔레트, 색연필, 필통을 서랍에서 꺼내 준비를 해야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의욕이 꺾여 그림 그리는 걸 주저하게 된다는 겁니다. 


의견을 수렴하여 방에 있는 고무나무 책장의 맨 윗 칸을 제외한 나머지 세 칸을 마음대로 쓰라고 내줬습니다. 첫 번째 칸은 책과 노트가 꽂혀 있습니다. 

나머지 두 칸은 미술 용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두 칸이면 충분하다고 해서 마지막 칸은 비워 놓았습니다.

되도록 책장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 합니다. 

책장은 저희 집에서 유일하게 혼돈으로 가득한 공간입니다. 

남편은 흐뭇하게 책장을 바라봅니다. 

나만의 공간은 때로 책장 하나로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방해 요소가 없는 조용한 공간을 선호합니다. 

선호도에 따라 혹은 처한 환경에 따라 창작 공간은 어디든 될 수 있습니다. 

교회나 성당처럼 신성한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도서관이나 카페처럼 어느 정도 소음이 있는 공간을 선호할 수도 있습니다. 

남편은 주말에 나들이를 가면 음식을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 볼펜을 꺼내 냅킨 위에 포크나 물잔, 피클 접시를 스케치 합니다. 


 친구 한 명은 뜨개질을 잘합니다. 

저는 가방을 사려면 크기, 색깔, 디자인, 무게를 고려해 마음에 드는 걸 찾느라 애를 써야 합니다. 

친구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디자인 하여 직접 가방을 만듭니다. 

지갑, 키홀더, 인형, 수세미, 티 코스터, 테이블 매트, 주머니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척척 만들어 내는 친구의 주요 작업 공간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집 앞 놀이터입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며 창조적 영감을 받으려 놀이터에 가는 걸까요? 

아닙니다. 친구에게는 두 명의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그녀는 취직을 위한 공부까지 병행하고 있어 집에서는 자신만의 시간을 내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때 주변 벤치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며 뜨개질을 합니다. 

아이들 고함 소리로 시끌벅적한 공간 안에서 친구는 고요히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해 갑니다.


마음껏 창작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지만 완벽한 환경을 갖추기는 쉽지 않습니다. 

불편하거나 제한된 환경에 놓여 있을 때에도 의지만 있다면 창조적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은 1940년 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군인으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독일군 포로로 잡혀 폴란드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그는 포로로 잡힌 수감자들 중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들과 연주를 하기 위해 곡을 작곡합니다. 

수용소에서 구할 수 있었던 악기는 부서진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클라리넷이었습니다. 

그는 악기에 맞춰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작곡합니다. 

1945년 1월, 메시앙을 비롯한 3명의 연주자는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 5천명의 포로들 앞에서 초연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나만의 창조 공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어디든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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