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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06. 2024

메모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어제 점심에 무얼 드셨나요? 엊그제 무슨 옷을 입으셨나요? 

지난주에 받은 택배는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은 1 더하기 1은 2의 수학 공식처럼 즉각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가만있자 내가 어제 뭘 했지? 하며 기억을 더듬어야 합니다. 


뇌는 망각 기능이 있습니다. 

망각함으로써 우리 머릿속에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공간이 생깁니다. 

우리는 뇌의 특성과 한계를 알기에 중요한 정보나 기억해야 할 일을 기록합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단상을 종이에 붙들어 놓기도 합니다. 

메모를 하면 두뇌가 기억해야 할 정보 양이 줄어듭니다. 

두뇌는 부담을 덜고 다른 활동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이자 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떠오르는 생각을 기호, 문자, 그림으로 기록했는데요. 

메모는 상당 부분 소실되었지만 남아있는 분량만도 7천여 쪽이라 합니다. 

2006년 스카이 다이버인 아드리안 니콜라스는 500년 전 다빈치가 남긴 낙하산 드로잉을 보고 똑같은 모양의 낙하산을 만들어 낙하에 성공합니다.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으면 그 생각은 백년이 지나도 살아남습니다.


 1994년에 기업가 빌 게이츠는 경매에 나온 다빈치의 필사본 코덱스 해머(Codex Hammer)를 3천만 달러(약 326억)에 구입하여 화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노트는 다빈치가 1506년에서 1510년에 걸쳐 작성한 것입니다. 

72쪽 분량이며 350개가 넘는 드로잉과 글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게이츠가 거금을 들여 다빈치 노트를 구입한 건 천재라 불리던 예술가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생성되고 발전해 나갔는지, 어떤 식으로 작품을 구상했는지 그가 남긴 메모를 통해 근원을 찾으려는 시도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평소에 메모를 합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시 제목을 적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적기도 합니다, 

글을 쓸 때 메모는 글쓰기 진행에 큰 도움이 됩니다. 


밖에서는 핸드폰에 있는 메모장을 사용합니다. 

집에서는 주로 비망노트라 불리는 손바닥만한 수첩을 씁니다. 

비망노트는 가로 8.5cm, 세로 12.5cm이고 17장 분량입니다. 

문구점에서 300원이면 구입할 수 있습니다. 


종이 노트에는 원고 관련 아이디어를 적습니다. 

핸드폰 메모장은 7개 주제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계좌 및 주소/읽을 책, 볼 영화, 가볼 여행지/식료품 목록/일상 아이디어/현재 쓰고 있는 원고 아이디어/앞으로 쓸 책 아이디어 1/앞으로 쓸 책 아이디어 2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뇌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합니다. 

순간적으로 착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생각을 확 낚아채어 적지 않으면 순식간에 놓쳐버립니다. 


메리 올리버는 <긴호흡>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내가 그걸 쓴 이유가 아닌 느낌의 체험으로 나를 데려간다. 이건 중요하다. 

그러면 나는 그 아이디어, 곧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기보다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이전부터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내가 공책에서 포착하고자 하는 건 논평이나 생각이 아니라 그 순간이다.’ 


저는 샤워를 하며 머릿속으로 문장을 구성하거나 문맥을 다듬어 봅니다. 

문장을 생각하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얼른 몸을 닦고 나와 노트에 적습니다. 

메모가 여의치 않는 상황이라면 문장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소리내어 중얼거린 후 나중에 옮겨 적습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작은 소음이나 움직임에도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침대에 누우면 다음날 써야 하는 주제를 생각합니다. 

침실에는 핸드폰이나 노트를 두지 않기에 막 잠이 들려 할 때 무언가 생각나면 다시 일어나 거실로 갑니다. 

책상에 앉은 후 문장을 적습니다. 

일어나는 게 귀찮아 머릿속으로만 내용을 되새긴 후 잠이 든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일어나니 전혀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기억력을 신뢰하기보다는 메모를 선택하게 됩니다. 


메모는 창조 활동을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됩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도 순간순간 메모를 하면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풍경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느꼈다면 그 기분을 기록해 보세요.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면 기록해 보세요. 

일을 하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면 기록해 보세요. 

순간을 포착하여 느낌을 적는 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뭔가를 적고 싶은데 노트나 핸드폰이 없다면 주변에 기록할 만한 종이를 찾아보세요. 

신문지, 광고지, 냅킨도 훌륭한 노트가 될 수 있습니다. 


문장이 아니어도 됩니다.

 단어, 그림, 숫자, 도형 등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나중에 다시 노트를 확인하며 영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활용할 수 있기만 하면 됩니다. 

제 핸드폰 메모장 분류 중 ‘일상 아이디어’에는 ‘공중그네, 롯데월드, 별로’ 라는 세 단어가 적혀 있습니다. 

단어를 읽자마자 그 당시 상황이 떠오릅니다. 

동네 소규모 책모임에 나간 적이 있는데요. 

그날도 몇 명이 모여 책 얘기를 나누기 전 어떻게 지냈는지 가벼운 안부를 묻고 있었습니다. 

언니 한 명이 딸과 함께 나들이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코로나 시절이었습니다. 

언니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져 딸과 함께 롯데월드에 갔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외출이라 언니도 딸도 신이 났지요. 딸이 공중그네를 타고 싶어 해서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딸 순서가 되자마자 기구 운영이 잠시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코로나 방역 수칙 때문에 놀이 기구 운영 시간이 정해져 있었던 거예요. 

다른 기구들도 그런 식으로 몇 번 타지 못하게 되자 언니는 기분도 안 좋고 짜증이 났다고 합니다.

 딸이 실망할까봐 미안하기도 하고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어땠어? 힘들지 않았어?” 물었더니 딸이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대요. 

“엄청 좋았어!!” 

언니는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어른과 아이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대요. 

아이는 엄마와 놀이동산을 방문한 것만으로도 기뻤던 겁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일상을 살아갈 때 어디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 오늘이 최고의 하루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대화 내용을 잊지 않으려 핸드폰을 꺼내 빨리 세 단어를 적었습니다. 

글을 쓸 때 활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적어 놓았는데 이렇게 써먹게 되는군요. 

메모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무엇을 메모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상부터 시작해 보세요. 

덧없는 생각을 적어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네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밖에 비가 오는구나. 비 오니 신발이 젖겠네. 

빗소리 좋다. 졸리기도 하고. 내일은 공기가 깨끗하겠다. 

저녁에 뭘 먹을까? 비가 오니 김치전을 부쳐볼까? 

비 오는 날에는 왜 전과 막걸 리가 생각날까? 

계절에 어울리는 음식은 뭐가 있지? 

관련이 전혀 없는 이런 저런 키워드를 적다보면 그 중 마음이 움직이는 무언가가 생깁니다. 

그 생각을 키워나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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