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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13. 2024

가장 소중한 순간


이곳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당신의 죽음에 조의를 표합니다. 

당신은 일주일 동안 이곳에 머물게 됩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골라 주세요. 

당신이 고른 추억을 영화로 재현해 드립니다. 

영상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당신의 영혼은 ‘다른 세계’로 넘어가 그 기억 속에서 영원히 머물게 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원더플 라이프’는 이렇게 시작한다. 

죽은 사람들은 폐교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직원들과 인터뷰를 통해 가장 행복한 순간을 더듬어 본다.

쉽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고심하는 사람도 있다.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는 사람도 있고 선택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이 나라면 어떤 순간을 선택할까 생각하게 된다.


머릿속으로 별빛같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펼쳐본다. 

행복했던 한 순간에 영원히 머물러 사는 것보다 슬펐던 순간도 기억하며 사는 게 훨씬 행복할 것 같지만, 그 중에서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이 동네에서 산 7년 동안의 삶 중에서 남편과 산책했던 날들 중 하루를 고를 것 같다. 

나무와 꽃을 바라보며 손잡고 걸어가던 평범한 순간.

걷다가 지치면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던 순간.     

지난 7년 동안 매일 매일이 소중하고 행복했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서른다섯 무렵 시작되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50 넘어 남편이 퇴직하면 살고 싶은 도시에서 어디든 살아볼 테니 행복은 더 짙어지겠지. 

그때까지 살아만 있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넉넉히 남아있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그동안 나와 함께 여행지에서 보낸 시간 중 한 순간을 고를 것 같다고 대답한다.     

부모님은 어느 순간을 고르실까?

두 분만의 신혼 때를 고르거나 자식들이 어렸을 때 함께 한 시절을 고른다면 좋겠지만, 만약 결혼 전 어느 때를 고른다면? 

엄마가 고등학생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엄마가 할머니와 함께 했던 그 순간을 고른다면?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 것 같다.

나 역시 부모님과 함께 하던 어린 시절을 고르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부모님께서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느끼시면 좋겠다.     


어느 순간을 고를지 만나는 지인마다 묻고 싶지만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질문하는 게 조심스럽다.

영화를 본 친구에게 어느 순간을 떠올렸냐고 물으니 그가 천천히 대답한다.

글쎄. 나는 그렇게 행복한 순간이 없는 것 같은데. 내 인생은 그럴만한 게 잘 없어.     


영화에서 죽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인생 최고의 순간은 사소한 추억들이다.

아내와 벤치에 앉아 대화하는 순간, 딸 결혼식 날 자식이 꽃을 건네는 순간, 엄마 무릎에 누워 구름을 바라보던 순간. 

티끌만한 작은 기쁨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인생에서 고를만한 가장 소중한 순간이 없다면 이제부터 만들어도 늦지 않다.

아직 살아 있으니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누군가를 돕거나 사랑할 때다.      

내일 살아있을지 알 수 없으니 오늘 하루도 작은 행복 하나를 심어야겠다.        

   


50년이 지나서 내가 누군가의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정말 멋진 일이야

원터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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