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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18. 2024

노화


노아 바움백의 영화 <위 아 영>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40대인 주인공 조쉬(벤 스틸러)는 20대인 친구 제이미(아담 드라이버)와 자전거를 타다 허리를 삐끗한다. 

의사는 근육이 놀랐다며 문제는 그게 아니라 무릎에 관절염이 있다고 말한다. 

조쉬가 부상을 입어 그런 거냐고 묻자 관절이 퇴화되어 그런 거라는 답이 돌아온다. 

조쉬는 의아해하며 제 나이에요? 라고 다시 묻고,  의사는 관절염은 마흔 둘에도 마흔 넷에도 발생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조시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제이미를 만난 조쉬는 말한다.


“기분이 이상해. 상상만 하던 일들을 직접 겪는 나이라니.”

제이미가 대답한다.

“전 솔직히 말하면 죽지도 않을 것 같아요.”     


그래. 나도 제이미 정도는 아니지만 고작 20년 뒤에 관절이 아프고 눈가에 주름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노화가 시작된 내 몸에 도무지 적응 되지 않는다.

몸 사용 수명이 이토록 짧다니. 

손빨래를 제외하면 육체적으로 힘쓰는 노동은 해본 적 없는데.

혹시 내 몸이 허약 체질이라 그런걸까 하는 의구심이 불쑥 들 때도 있다.     


올해 오십 된 지인이 말한다.

“마흔 다섯 넘으니 주름이 확 지더라. 얼굴이 막 흘러내린다니까. 시력은 어떤지 아니? 지금 쓰고 있는 이 안경 초점이 세 개야. 멀리 볼 때, 가까이 볼 때, 중간쯤 볼 때 초점이 다 달라져. 눈이 얼마나 피곤한지. 핸드폰을 적당한 위치에 놓고 봐야 보인다니까. 삶의 질이 떨어져.”     


내 앞에서 엄마와 함께 걸어가던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말한다.

“엄마, 이제 나는 키가 안 컸으면 좋겠어. 나이도 안 먹고 싶어.”     


얼마 전 비행기 티켓을 끊으며 생각했다. ‘비행기 안에서 목마르면 어쩌지?’ 

그동안 수없이 많은 비행기를 탔지만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문제였다. 

때 되면 물 주고 밥 주고 술 주는 데 걱정할 게 뭐 있어? 

이젠 걱정된다. 때 되기 전에 목마르면 어쩔까 하는. 


예전엔 에어컨이 켜졌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젠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에어컨과 되도록 먼 곳에 자리 잡는다.

 여름에 반팔로 외출할 땐 머플러와 얇은 가디건은 무조건 챙기고 본다. 

어디서 어떻게 에어컨 바람의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으니.

나이가 들수록 몸에 장착해야 할 물건은 더욱 늘어날 거다. 돋보기, 지팡이, 보청기.

엄마가 외출 한 번 할 때마다 가방에 온갖 물건을 다 집어넣는 이유가 있었다.     


몸은 삐거덕대기 시작했지만 마음은 나이를 먹을수록 고요해진다.

언젠가는 아빠처럼 웬만한 일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경지에 오르겠지.

영화 속 제이미처럼 ‘죽지도 않을 것 같은’ 나이였을 때는 폭풍처럼 불안할 때가 많았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에 초조했다.

마음속에 날뛰던 말을 조금씩 길들이며 살다보니 마흔이 넘었고 이제는 몸을 돌봐야 할 시기에 접어들었다.

자기한테도 관심 좀 기울이라고 몸이 신호를 보내온다.

아직까지는 마음보다 몸 돌보는 게 쉽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조쉬는 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아내에게 고백한다. 

“난 마흔 넷이야. 못할 일도 있고, 못 가질 것들도 있는 나이.”

그는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매일 멋진 선물을 받고 있었으면서도 인정하지 못했다는 걸. 

그의 삶은 이제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마음 속 말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으니.     



노인을 경외하는 것은내가 힘겨워하는 내 앞의 남은 시간을 그는 다 살아냈기 때문이다늙음은 버젓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한 결과일 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시와 산책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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