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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26. 2024

결혼은 매일매일


금정역 쇼핑센터 안에 있는 중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옆 테이블에 앉은 남녀를 힐끗 보기만 했는데도 감이 온다.

소개팅 하는구나.

늦은 점심이라 한적한 분위기. 대화를 듣지 않으려 해도 들릴 수밖에 없는 위치다.

여자가 말한다.


“40 전까지는 결혼 안하니? 누가 그러면 해야죠 그랬는데, 40 넘어가니 왠지 마지노선을 넘은 것 같아서, 결혼 안하니 물으면, 저도 모르게 비혼주의인데요 라고 대답하게 되더라고요.”    

 

둘 사이가 좋아 보인다. 

우리는 그들 대화에 방해될까 싶어 조용히 면발을 삼킨다.

둘이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고 싶다.

결혼은 해보지 않고서는 어떤 느낌인지 결코 알 수 없을 거라고,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하지만 상대방을 챙겨주는 게 더 큰 기쁨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지인들을 보면 결혼이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서로를 신뢰하고 아끼는 부부도 많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들의 행복이 눈에 띄지 않는 건, 서로의 관계를 굳이 남에게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다.     


13년간 결혼 생활을 하며 수많은 부부를 만났고 교제해 왔다. 

처음엔 상대방에게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부부가 많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니 그럼 결혼은 왜 한 거지?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불평을 하고 있지만 끈끈한 애정으로 묶인 부부가 많다는 걸.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기에 말하지 않는, 둘 만의 고유한 관계가 있었다.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전우애 같은 감정도 있었고, 그의 연약한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기에 감싸주려는 측은한 감정도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많은 부부가 그들만의 독특한 행복을 느끼고 연합하며 살고 있었다. 

얼핏 보면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결혼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할 것 같다는 20대 후반 친구에게 물었다.

“작은 투룸에서 시작하는 건 어때? 돈 없는 게 당연하지. 이제 막 직장 들어갔잖아. 둘이 몇 년 열심히 모아서 이사하면 되는데.”

“에이, 거기서 어떻게 살아요. 돈 더 모아서 나중에 결혼하는 게 낫죠.”     


빌라 반지하에서 신혼 생활을 하다 아파트로 이사를 하니 완전 딴 세상이긴 하다.

나도 그 친구처럼 태어날 때부터 아파트에서만 살았다면 투 룸에서 살림을 꾸리는 걸 상상하기 어려워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그 열악한 공간에서 남편과 함께 보낸 시간이 있었기에 관계가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어려움을 헤쳐가다보면 서로를 의지하며 믿는 마음이 커진다.

사람의 본성은 평안할 때가 아닌 위기가 닥쳤을 때 그대로 보여지니까. 

부부에게 고난이 주어질 때 선택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그걸 넘길지. 아니면 함께 짊어질지.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뎌온 부부일수록 서로를 향한 애정은 놀랄만큼 끈끈하다. 

표면적으로는 무심해 보일지라도.      


만약 몇 년 동안 돈을 더 모으고 결혼하기로 했다면 지금의 남편과 결혼 할 수 있었을까?

결혼할 시기에 배우자를 만났고, 적절한 시간동안 교제했고, 가진 게 없어도 결혼하자는 마음이 맞았기에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었다.

만약 남편을 20대 초반에 만났다면 결혼으로 이어지기 힘들었을 거다.     

나와 남편을 보며 신혼 같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둘이 싸우지도 않냐고 누군가 물을 때마다 늘 하는 답변이 있다. 

남편이 워낙 착해서 싸울 일이 없어요. 까다로운 제 성격을 다 받아주거든요. 

뒤에 덧붙여야 하지만 생략하는 말도 있다. 

저도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항상 노력해요. 


주변에 사이좋은 부부가 있다면 잘 관찰해보라. 그

들은 서로가 노력한다. 가끔이 아니라 매일매일. 

정말 그렇더라.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받아주는 관계는 한계가 있다. 

몇 년은 행복할 수 있지만 포용도 한계가 있기에 어느 순간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한다. 


미혼이라면 잘 모를 수도 있다. 

부부간에 사이가 좋으려면 매일매일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걸. 

매일요? 아니, 어떻게 매일 그럴 수 있나요? 

그게 가능한 이유는 일 년 이 년 노력하다보면 배려가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이 되면 어려울 게 없다. 

상대방이 나를 쳐다보면 웃어주고, 잔소리 하는 대신 그냥 내가 하고, 무시하는 말은 하지 않고, 양치컵에 물을 채워주고, 신발을 미리 꺼내놓고, 차 문을 열어주고, 손수건을 건네주고, 음식물 쓰레기를 갖다 버리고, 침구를 정돈하고, 욕실 물기를 제거하고, 무거운 식료품을 옮겨놓고 등등. 자잘한 목록은 끝도 없지만 상대방을 향한 애정어린 행동이 몸에 베이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진다.   


주변에 결혼한 부부들은 다 불행해 보이고, 재미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는 이상 둘 사이에 맺어진 깊은 신뢰를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낳지 못했기에 아이를 키우는 양육의 기쁨을 알 수 없다. 

조카와 교회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어렴풋이 느낄 뿐.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와 평생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결코 알지 못했을 거다.

부모와 자식 간에 느끼는 사랑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 

완벽한 상대방을 찾는 건 절대, 불가능하지만 결혼해서 서로에게 완벽한 상대방이 되도록 맞춰가는 건 가능하다.

둥글게 둥글게 나를 깎고 상대방을 어루만지면서 둘 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엄청나게 재밌다는 사실을 꼭 말해주고 싶다.      


살아생전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고, 죽어서도 영광을 누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

그의 마지막 작품은 세상을 뜨기 2년 전인 1965년에 그린, <두 희극배우>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높은 무대 단상 위에 공연을 마친 두 남녀가 서 있다. 

한 남성이 앞에 나서길 주춤하는 여성 손을 이끌며 관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다. 

공연을 관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한바탕 놀다 갑니다. 즐겁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건 다 이 사람 덕분입니다. 

그림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호퍼는 아내 조세핀과 평생을 함께 했다. 유명한 화가와 유명한 화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는가.

 ‘세계 전체가 하나의 무대이고 사람들은 배우에 불과한’ 세상에서 그들은 멋지게 마침표를 찍었다. 

누구나 무대 위에 서야 한다면, 연기를 해야 한다면, 혼자도 좋지만 둘이 호흡을 맞추며 공연을 완성해 가는 것도 꽤 아름답지 않을까? 

둘만 있을 때는 가면을 벗어도 되니 한결 숨쉬기 쉬울 것이다.                



사랑엔 휴가가 없어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거야그러니까 사랑엔 휴가가 없어그게 사랑이야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듯사랑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어.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마르그리트 뒤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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