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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l 17. 2024

너와 나는 어떻게 친구가 되었을까?


“작년인가 내가 생각해봤거든. 너랑 내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거야. 봐봐. 우리 둘이 공통점이 하나도 없잖아. 너가 지금은 술도 마시지만 그땐 술도 안 마셨잖아. 난 술 좋아하고. 넌 담배 안피지. 난 담배 좋아하고. 넌 교회 다니지. 난 종교 없고. 넌 사람 많은 거 싫어하지. 난 사람 좋아하고. 넌 예술 좋아하지. 난 관심없고. 근데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연락을 하고 지내는 건지 모르겠어.”


친구 용만이를 만났다. 올 봄에 헤어지며 장마가 시작되면 파전에 막걸리나 먹자고 하며 헤어졌다. 

어제 아침 세찬 비가 내렸다. 

용만이가 이때쯤 보자고 했는데 생각하며 창밖을 보고 있자니 시간 되냐는 문자가 왔다.

너도 잊지는 않았구나. 


용만이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다.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왔으니 20년 넘는 세월이 쌓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용만이와 나는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친구나 선배들과 어울려 술 먹느라 바빴고 나는 교회 친구들 만나느라 바빴다. 

그때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과 MT도 한번을 가지 않았다. 

아웃사이더였던 나와 과 회장이었던 용만이와의 접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의 그의 소박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름과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촌스러움이 좋았다. 

그는 어디서건 당당하게 행동하는 내 모습과 외모?가 마음에 들었으리라 추측한다.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돈을 빌렸던 사람도 그였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며 수업도 거른 채 자고 있던 용만이는 내 전화를 받았다. 

잠이 덜 깬 채 나온 그에게 나는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용만이 증언에 따르면, 그가 얼마?라고 묻자 내가 얼마 있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그의 수중에 있던 돈은 20만원. 

나는 방학 때 과외를 해서 갚겠다고 하며 그 돈을 다 받아갔다고 한다. 

왜 돈이 필요하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친구들과 모임이 많은데 돈이 없어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용만이는 돈을 못 받을 줄 알았는데 몇 달 뒤에 20만원을 돌려줘서 오히려 더 놀랐다고 회상했다. 

“내가 4년 내내 너한테 기죽어 지냈잖아. 너가 돈 빌릴 때도 너무 당당해서.”


나는 옛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용만이는 까맣게 잊고 있던 내 과거를 들춰내는 데 선수다. 

용만이 증언에 따르면, 군대에서 내게 한번 편지를 써 보내면 나는 다섯 통을 답장했다고 한다. 

만날 때마다 오래 살려면 담배 끊으라고 잔소리를 했다고도 한다. 

20년이 넘도록 만날 때마다 한결같이 그 말을 한다면서, 그런데 그 잔소리가 고맙게 느껴진다고 했다.


내가 용만이에게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은 내 이삿짐을 옮겨준 거다.

대학을 졸업하고 강릉에서 대구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때 용만이는 시골집에서 1.5톤 트럭을 끌고 왔다. 내 짐을 대구에서 새로 구한 원룸까지 무사히 옮겨줬다. 함께 점심을 먹은 후 그는 다시 트럭을 끌고 강릉으로 가버렸다.

 세상 물정 모르고 돈 한푼 없던 내게 그가 얼마나 큰 호의를 베풀었는지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는 의리의 사나이였다. 


졸업 후에도 우리는 1년에 한 번은 만났다. 

그가 청주에 있으면 내가 거기로 갔고, 내가 서울에 있으면 그가 서울로 왔다. 

둘이 연인이었던 적도 없고 남녀 간의 미묘한 감정이 흐른 적도 없다. 

만나면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졌다. 

서로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그가 직장을 옮기고, 내가 여행을 떠나고, 그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내가 이사를 가고. 1년에 한두 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금까지 지내왔다.


나는 호불호가 강한 편이다. 

공통의 관심사가 없다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친구가 없을 수밖에. 

용만이는 유일하게 ‘나와 친한 친구가 되려면 필요한 요소’ 카테고리를 벗어난 사람이다. 

용만이는 나를 안드로메다에 사는 외계인처럼 생각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서로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가치가 완전히 다르고 공통된 대화 주제가 없더라도, 연락이 끊기지만 않는다면, 일 년에 한번 만나더라도 그 세월이 10년 이상 쌓인다면, 어느 순간  깊은 관계로 바뀔 수 있다. 

일 년에 전화 통화 몇 번이 전부고 얼굴 한번 보기 힘들지만 서로 연락하고 지낸 시간이 축적되면 찐한 친구로 느껴지게 된다. 

전제조건이 있다. 처음 몇 년간은 자주 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간이 필요하다.


올해부터 용만이가 서울역 근처에 있는 지점에서 일하게 되어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졌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함께 창경궁을 걷기로 했다. 

이런 식이면 일 년에 4번도 만나겠는걸. 

용만이가 담배만 끊으면 우리는 오래 오래 친한 친구로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새 나막신을 샀다며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나는 마침 면도를 다 끝낸 참이었다

두 사람은 교외로

가을을 툭툭 차며 걸어갔다 

기야마 쇼헤이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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