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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Oct 08. 2024

3. 라이브 공연

해 질 무렵 발리 전역의 레스토랑과 술집에서는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면 기타를 튜닝하고 음향을 점검하는 소리다. 

저녁 먹을 곳은 미리 정하지 않는다. 산책을 하다 라이브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식당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간다. 

곧 연주를 시작하겠거니 짐작하며 음식을 시키지만 착각이다. 

음향 점검을 6시에 한다면 실제 공연은 7시부터다. 

구성원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일렉 기타와 보컬 두 명으로 구성된 밴드가 가장 흔하다. 

드럼과 베이스, 혹은 키보드가 있는 4인조 밴드가 드물게 있다.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발리만큼 라이브 음악이 활성화된 도시는 처음이었다. 

어디서건 음악이 흘러넘쳤다. 

발리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몇 명 정도 되는지, 연주만 하며 밥벌이를 해결 할 수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밤마다 공연을 즐기며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다보면 어디선가 또 음악소리가 들려 왔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멈춰졌고 중력에 이끌리듯 그곳에 들어갔다. 2차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연주는 대개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나 역시 아마추어 밴드에서 키보드를 맡고 있기에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연습실에서 합주를 한다면 지적할 부분이 많겠지만 먹고 놀고 즐기겠다는 목적 하나로 모인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유쾌하게 들릴 뿐이었다. 

레퍼토리는 어디서나 비슷했다. 

애드 시런의 'Perfect', 톱 로더의 ‘dancing in the moonlight’, 스티븐 킹의 ‘stand by me', 레이디 가가의 'shallow' 등이 익숙했는데 그중에서도 매번 들었던 곡은 콜드 플레이의 ‘yellow'였다. 

사누르 펍에서도, 우붓 시내에서도, 스미냑 해변에서도 같은 곡이 울려 퍼졌다. 


택시를 탈 때마다 운전사들이 어디서 왔냐고 묻듯 공연을 할 때마다 보컬들은 ’yellow'를 불렀다. 

발리에서 밥 말리 초상화가 자주 보이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던 것처럼 이것 역시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 

음악소리에 끌려 들어간 어느 바에서 기타를 치던 보컬이 우리 부부에게 듣고 싶은 곡이 있냐고 물었다. 

그가 이문세나 장기하 노래를 알 리가 없었기에 콜드 플레이의 ‘Viva la vida'를 요청했다. 

보컬은 그 노래는 모르겠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 대신 다른 곡을 불러주겠다고 대답했다.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는 짐작하시겠지.


스미냑 해변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공연은 코미디처럼 보였다. 

해안가에는 빈백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파라솔 색깔과 테이블 모양에 따라 가게가 구분되었다. 

식당마다 레스토랑과 카페와 바의 역할을 동시에 소화했다. 

한국이라면 횟집으로 가득했을 터였다. 회를 먹지 못하는 나로서는 스미냑 풍경이 무척 부러웠다. 

노을을 보기 위해 바닷가를 찾은 관광객들이 하나둘 빈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모두가 바다를 향해 기댄 채 맥주나 칵테일을 마시며 서핑보드를 타는 서퍼를 구경했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도 점점 늘어났다. 


해가 질 무렵이면 빈백들 맨 앞쪽에 작은 단상이 세워졌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밴드 멤버들이 무대 위로 올라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왼쪽 레스토랑에서 설치한 단상과 오른쪽 레스토랑에서 설치한 단상간의 간격이 50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옆과 또 그 옆 레스토랑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식당 빈백에 앉든 이쪽 밴드 팀이 한곡을 부르고 다음 곡을 준비하는 사이 옆쪽 팀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공개 오디션 같은 장면이었다. 

스미냑 해변에서 연주를 하는 밴드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라이브 음악을 듣는 데 지불하는 비용은 한국 돈으로 5천원이면 충분했다. 

5천원이면 빈땅 맥주나 목테일을 마실 수 있었다. 

와인이나 칵테일은 한 잔에 만원 정도였다. 

돈이 없거나 바쁘다면 그냥 잠시 서서 혹은 해변 위에 앉아 음악을 들으면 그만이었다. 

나는 주로 발리에서 양조한 투 아일랜드나 해튼 와인을 마셨다.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와인이었다. 

밤이 되면 습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귀에 익숙한 음악을 듣다보면 한없이 마음이 느슨해졌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발리에서 사랑에 빠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발리는 사랑하기 좋은 도시였다. 

뜨거운 열기와 눅눅함에 하루 종일 시달렸지만 불평이 쏙 들어갈 만큼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아마 이 순간이 그리워 발리를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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