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에서 빵이 맛있다는 ‘무슈 스푼’에 들렸다. 무슈(mosieur)는 프랑스어로 ‘귀하, 님, 나으리’ 라는 뜻이다. 상호명답게 프랑스 빵 전문 빵집이었다.
소박한 빵들을 뒤로하고 아이싱이 듬뿍 올라간 페스츄리를 골랐다.
세금 포함 42,900루피였다. 발리 물가를 생각하면 꽤 비싼 가격이었다.
크롬볼로니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렇게 생긴 빵을 발리에서 몇 번이나 보았기에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직원은 하얀 상자에 빵을 넣어 주며 ‘메르시’(Merci)라고 말했다.
남편은 상자가 든 비닐봉지를 건네받았다.
숙소까지는 20분을 걸어가야 했다. 저녁 무렵이었지만 여전히 더웠다.
‘몽키 포레스트’가 있는 길을 지나야 했다.
원숭이 600마리가 모여 사는 숲인데 우붓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코스 중 하나였다.
우리는 어제 원숭이 숲을 방문해 야생 원숭이를 실컷 본 터였다.
몽키 포레스트 로드에서 어슬렁 거리는 원숭이를 보는 건 개를 보는 것만큼 흔한 풍경이었다.
길가에 원숭이 몇 마리가 모여 장난을 치고 있었다. 무심히 원숭이를 바라보며 걸어갔다.
순간 원숭이 한 마리가 옆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경계심을 가지려는 찰나 앞서가던 남편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내 빵”
방금 전까지 남편이 들고 있던 비닐봉지가 원숭이 손에 들려있었다.
"내 빵 내놔.” 나는 소리쳤다. 원숭이는 뒤로 좀 더 물러났다.
“그거 내 빵이야. 내놔.” 나는 단호하게 외치며 손을 내밀었다.
원숭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박스를 열려고 애를 썼다.
빵을 뺏긴 남편은 황망한 표정이었다.
원숭이에게조차 소매치기를 당하다니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고 남편은 한탄했다.
원숭이는 똑똑했다. 봉지를 잡아당기면 무의식적인 반사작용으로 힘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음에 분명하다.
봉지를 잡는 대신 먼저 남편 팔을 탁 쳤다.
남편이 깜짝 놀라 팔에 힘을 빼는 순간 봉지를 낚아챘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숙소로 되돌아왔다.
남편은 뭔가 발리와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는데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듣게 될 말이었다.
며칠 후 울루와뚜 사원을 방문했다.
거기에 거주하는 원숭이는 성질이 더 포악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현지 가이드들 손에는 나무로 만든 새총이 들려 있었다.
우리는 물병, 핸드폰, 선글라스, 모자를 가방에 넣었다.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 로드같은 절벽 위에 사원이 세워져 있었다.
절경이었지만 태양이 잡아먹을 듯 내리쬐어 감탄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날씨였다.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햇빛 샤워를 해야 했다.
사원을 둘러보는 동안 원숭이가 선글라스 하나를 와그작 씹어 먹는 장면을 목격했다.
슬리퍼 한 짝을 빼앗겨 이도저도 못하는 아이와 가족들을 보기도 했다.
원숭이들이 우르르 옆을 지날 때면 영화 <혹성탈출>이 생각났다.
저들 중에 ‘시저’가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작년에 울루와뚜 사원에서 선글라스를 뺏겼던 지인이 있었다.
당황해 하며 서 있던 그에게 할머니 한분이 다가왔다.
“10달러 주면 선글라스 찾아줄게.”
지인이 돈을 건네자 할머니는 가방에서 망고 하나를 꺼내 원숭이에게 내밀었다.
원숭이는 망고를 잡으며 선글라스를 할머니에게 건네주었다.
눈앞에서 물물교환 현장을 지켜보던 지인은 뛰는 원숭이 위에 나는 할머니가 있다며 놀라워했다.
원숭이 사원과 울루와뚜 사원 곳곳에는 원숭이를 위한 먹이가 널려있다.
그들은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원숭이들이 수시로 관광객 물건을 갈취하지만 발리인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발리에서는 원숭이가 신성한 동물로 대접받는다.
힌두교에서 유명한 서시시인 <라마야나>에서 영웅 라마의 오른팔로 나오는 동물이 있다.
‘하누만’(Hanuman)이라는 하얀 원숭이다.
<라마야나>를 극으로 꾸민 깨짝 댄스에서도 하누만은 시따 공주를 구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발리에서 태어난 원숭이는 자신이 얼마나 큰 복을 누리고 있는지 알려나.
다음날 ‘데일리 바게트‘라는 빵집에서 50,000 루피를 주고 크롬볼로니를 다시 구입했다.
크롬볼로니는 크로와상과 봄볼로니를 합친 디저트인데, 봄볼로니는 크림이 가득 든 이탈리아식 도너츠다.
달콤한 빵 속에 바닐라 크림이 듬뿍 들어 있었는데 과연 원숭이가 훔쳐갈 만한 맛이었다.
발리에서 맛본 빵 중 가장 맛있었기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원숭이를 용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