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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Oct 11. 2024

5. 모기와 도마뱀 그리고 개

발리 공항에서 미리 예약한 택시를 타고 사누르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였다. 

1시간 시차가 있으니 한국이라면 10시일 터였다. 

해안가에 있는 숙소라 체크인을 하자마자 바다를 보러 나갔다. 

해변에 있던 레스토랑의 주방 마감은 9시 30분이었다. 

배가 고팠기에 칵테일과 피자 한 판을 시켰다. 

비치 베드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양양 할머니댁에서 봤던 별들보다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많았다. 

천천히 마가리타를 마셨지만 피자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손님이라고는 세 팀밖에 없었다.

성인 손바닥 두 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피자가 나온 건 주문한지 40분이 지나서였다. 

첫날부터 발리만의 느긋함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바닷가에 앉아 피자를 기다리는 동안 발리 모기들은 그들만의 축제를 즐겼다. 

희생제물은 나와 남편이었다. 한시간 동안 팔과 다리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사방이 울긋불긋하게 부풀어 올라 알레르기가 생겼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모기는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었다. 침실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식당에서도. 

모기는 특히 남편 피를 좋아했다. 피부가 하얀 남편 몸은 여행이 끝날 무렵 애처로울 정도로 붉어졌다. 

모기는 목과 허벅지는 물론이고 등까지 파고들어 침을 꽂았다. 소중한 철분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주기적으로 몸을 흔들어 모기를 쫒아야 했다. 

건기가 이정도면 우기 때는 모기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도마뱀 찌작(Cicak)도 심심찮게 출몰했다. 

숙소 방문이나 창문을 닫을 때 그 틈새로 재빨리 들어오거나 나갔다. 

야외에 앉아 있으면 담장을 타고 후다닥 기어가는 도마뱀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워낙 빠르게 움직였기에 바퀴벌레인가 싶어 흠칫 놀랄 때가 많았다. 

우리보다 도마뱀이 더 놀랐을지 모른다. 도

마뱀은 사람을 무서워해 평소에는 천장의 틈 같은 곳에 숨어 있다고 한다. 

그러다 모기나 벌레를 발견하면 그걸 잡아먹으려고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은 손가락 한마디나 두 마디 정도의 작은 크기였다. 


아융 강에 살던 도마뱀은 달랐다. 

래프팅을 하며 도마뱀을 몇 번 마주쳤는데 장딴지만한 녀석들이 바위 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새끼 악어처럼 보였다. 아무리 이로운 동물이라도 크기가 커지면 무섭기 마련이었다.


거리에는 개들도 많았다. 

덩치 큰 개를 마주할 땐 무섭기도 했다. 

들개라고 하기에는 온순했고 집개라고 하기에는 지저분했다. 

유기견일까? 발리에서는 집주인이 있더라도 개를 밖에 풀어놓고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개들이 짖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우두커니 길가에 앉아 있거나 축 늘어져 잠을 자거나 무심히 거리를 떠돌았다. 

털이 깨끗하고 잘 관리된 개들을 끌고 가는 건 대부분 발리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었다. 

나머지는 시골 누렁이와 별반 나을 것 없는 처지였다. 

피부병에 걸린 개들도 눈에 띄었다. 먼지투성이와 상처로 뒤덮인 개들을 볼 때마다 괴로웠다. 

개들은 도마뱀이나 개미처럼 자연의 일부로서 그곳에 살고 있었다. 


어디 개뿐인가. 발리에서는 닭들도 유유히 골목을 걸어 다녔다. 

닭은 날개를 퍼덕이며 낮은 담벼락 위를 오르려 애썼다. 

온갖 새들이 오전 6시만 되면 일어나라고 소동을 부렸다. 

짹짹 소리가 꿈속까지 파고들어 잠을 깨웠다. 


개미들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만주를 먹겠다며 정의의 부대를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발리에서는 곤충과 동물이 넘쳐났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발리를 떠나야만 했다. 

우리는 새들의 알람을 들으며 일어났고 개와 닭 옆을 조심스레 지나갔으며 파리가 앉았던 반찬을 맛있게 먹었다.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을 온몸에 발랐고, 방문이나 창문을 열 때마다 손뼉을 쳐서 도마뱀이 미리 도망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이불 속을 기어 다니는 개미는 바닥으로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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