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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Oct 14. 2024

6. 거리의 무법자

사누르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해안가 쪽으로는 좁은 길밖에 없었다. 그걸 반으로 나눠 자전거와 도보 길을 만들었다. 

도로 위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과 걷는 사람 뿐이었다. 

우리가 머문 머큐어 리조트에서 아이콘 발리 쇼핑몰까지는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 1시간 거리였다. 

하루에도 몇 번 그 길을 오갔다. 

쇼핑몰 영화관에서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보며 더위를 식혔다. 

쇼핑몰이 아닌 이상 에어컨이 나오는 장소를 찾기 어려웠다. 


걷다가 지치면 아무 카페나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오후에는 칵테일이나 맥주가 제격이었다. 

어느 식당에서 먹고 마시던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자전거를 빌려 타기도 했다. 좁은 길이 종종 있었지만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 


사누르에 머무르는 관광객은 연령대가 높았다. 

호주에서 온 외국인이 가장 많았는데 외모나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매년 100만명의 호주인이 발리를 방문한다고 한다. 

퍼스에서 발리까지 비행기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섬나라에 살면서 또 다른 섬을 방문하는 건 상대적으로 발리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은퇴한 부부가 연금으로 여행하기에 좋은 지역이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사이에서 고요히 머무르다 우붓으로 넘어왔을 때 도시의 소란스러움에 깜짝 놀랐다. 

시골 쥐가 서울에 상경한 기분이 이런 걸까? 

우붓에서 예약한 숙소는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도로 안쪽에 있어서 방은 조용했지만 숙소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오토바이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오토바이 소리를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건 주관적인 판단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오토바이를 타는 발리인에게 그 소리는 새소리처럼 배경음악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붕붕 거리는 오토바이 소리가 수시로 들려왔다. 

우붓 왕궁과 우붓 시장이 있는 사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뒤섞여 북새통을 이뤘다. 

짬뿌한 산마루, 네카 미술관, 사리 오가닉 워크, 심지어 데일리 바게트 빵집까지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무조건 우붓 메인 로드를 통과해야 했다. 

불평을 하며 걷든지 즐겁게 받아들이든지 둘 중 하나였다. 말했던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발리를 떠나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애정을 담아 오토바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며 휴대폰을 보는 사람도 종종 있었고 두 명도 타기 힘든 오토바이에 세 명이 타는 경우도 흔했다. 뒤에 앉은 사람은 앞사람을 잡지도 않은 채 두 손으로 연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발리에서는 중학생만 되도 오토바이를 타기에 그들의 운전 솜씨가 걱정되지는 않았다. 

요리 조리 자동차를 피해 기세 좋게 달리는 운전 실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2018년 자료에 의하면 발리에서 오토바이는 350만대, 승용차는 4만대로 집계되었다. 

발리 인구는 약 310만명이니 사람보다 오토바이가 더 많은 셈이다. 

대부분의 발리인은 오토바이가 있지만 구매 비용이 만만치는 않다. 

기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몇 년 할부로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국제 운전면허 교류가 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따라서 발리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타는 건 불법이다. 

하지만 수많은 관광객이 매일 오토바이를 빌린다. 대여점도 많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도 모른 척 한다. 

오토바이는 교통체증이 심한 발리에서 가장 유용하고 저렴한 이동 수단이다. 

하루 빌리는 비용은 한국 돈으로 만 원이 되지 않는다. 


휘발유 값도 저렴하다. 리터당 천 원 정도인데 오토바이가 생활필수품이라 정부에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한국에서 전기세나 수도세를 함부로 인상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발리에 오면 오토바이를 빌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모두가 타고 다니니까. 

하지만 한국에서 오토바이 좀 타는 사람 아니라면 대여는 하지 말자. 

가벼운 접촉 사고라도 나면 모든 책임은 오토바이 운전자가 뒤집어쓰게 된다. 

불법으로 운전했기 때문이다. 부르는 게 값이라 얼마가 청구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몸도 다치고 마음도 다친다. 

바람을 맞으며 오토바이를 직접 몰고 싶은 마음은 꾹 눌러두고 고젝을 부르기를 바란다. 


골목을 걷다보면 작은 가판대 위에 앱솔루트 보드카 병이 주르륵 늘어져 있는 걸 보게 된다. 

병 안에는 휘발유가 들어있다. 오토바이 운전자를 위한 임시 주유소다. 

주유소보다 가격도 비싼데 누가 이런데서 기름을 넣을까? 

몇 년 전 초보 운전자 시절에 서판교 사거리에서 차가 멈춘 적이 있다. 

기름이 똑 떨어졌기 때문이다. 

긴급 출동으로 주유 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기에 누가 가판대에서 기름을 넣을지 감이 온다. 

나 같은 사람이다. 

갑자기 휘발유가 떨어져 오토바이가 멈추면 궁여지책으로 가판대에서 사서 넣는 거다. 

주유소가 어디나 있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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