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맛본 첫 음식은 화덕에 구운 피자였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관광지 메뉴판을 들고 잠시 고민하다 피자를 시켰다.
웬걸. 도우는 쫄깃했고 토핑은 충실했다.
여기가 이정도면 맛있다고 소문난 레스토랑은 얼마나 훌륭할까?
구글 맵에서 리뷰 100개 이상, 평점 4.5이상 받은 식당이라면 어디든 맛있었다.
꼬들꼬들한 면발을 양념에 볶은 미 고렝, 시금치처럼 생긴 모닝글로리를 짭짤하게 볶은 깡꿍, 숯불에 구운 생선구이(이깐 바까르), 과일이 층층이 깔린 샐러드볼은 매일 먹어도 좋을 맛이었다.
오리를 바나나 잎에 싸서 구운 베벡 베투투와 어린 돼지를 구운 바비 굴링은 바삭바삭하면서도 촉촉했다.
닭고기, 돼지고기, 새우 등에 양념을 바르고 꼬치에 끼워 숯불에 구운 사테는 걸쭉한 땅콩소스가 더해지며 맛이 살아났다.
인도네시아 볶음밥인 나시고랭도 삼발 소스에 비벼 먹으니 격이 달라졌다.
고기나 밥에 함께 곁들여 먹는 삼발 소스는 식당마다 맛이 달랐는데 포장해 오고 싶을 정도였다.
삼발은 한국의 고추장이나 김치 양념과 비슷하지만 좀 더 자극적이다.
고추, 마늘, 식초, 양파, 새우 페이스트, 라임, 소금 등을 넣어 만든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른 것처럼 발리에서도 집마다 제조법이 달라 맛도 달라진다.
인도네시아는 쌀농사를 짓기에 밥과 함께 먹는 요리가 많다.
나시 짬뿌르가 대표적인데 한국의 백반처럼 현지인들이 흔히 먹는 음식이다.
큰 접시에 밥과 여러 가지 반찬이 함께 담겨 나온다. 손님이 직접 고를 수도 있다.
식당마다 반찬 종류도 다르고 맛도 달라 매번 기대가 된다.
하루 한 끼는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발리에서는 안심해도 된다.
다만 향신료에 민감하다면 발리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나라마다 고유의 향이 음식에 베여 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그게 뭔지는 딱히 모르겠으나 발리만의 맛이 전체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알새우 칩과 라임은 어떤 음식을 주문하건 딸려 나왔다.
라임 조각을 반찬에 뿌리고 반찬처럼 알새우 칩을 먹었다.
바삭바삭한 알새우 칩은 남편이 가장 좋아한 반찬이기도 했다.
도전하지 않은 음식도 있다.
조식을 먹는 레스토랑에 부부르 아얌이 항상 놓여 있었다.
인도네시아 닭죽인데 닭죽이라기보다는 미음처럼 보였다. 시각적으로 끌리지 않아 끝내 먹지 못했다.
박소도 마찬가지다.
박소는 동그란 완자로 닭고기, 생선 등을 갈아 오뎅처럼 만들어 고기 국물에 넣어 먹는 음식이다.
식당과 길거리 노점에서 종종 보았지만 먹지 않았다.
예전에 홍콩에서 맛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후로 굿바이다.
기대했던 커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인도네시아는 베트남과 더불어 아시아 최대의 커피 생산국이다.
동물 학대 논란이 있는, 사향 고양이 똥으로 만드는 코피 루왁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네덜란드는 18세기에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며 대규모 커피 농장과 차밭을 조성했다.
수마트라, 술라웨시, 자바 섬 등이다.
특히 자바섬에서 생산되는 커피와 설탕은 세계 공급량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였다.
발리 커피는 터키식처럼 필터로 거르지 않고 커피 가루 그대로 뜨거운 물을 부운 후 가루가 가라앉으면 마신다.
오랜 시간 커피를 재배해 왔기에 어떤 맛일지 궁금했는데 내 입맛에는 그저 쓴맛만 느껴질 뿐이었다.
인도네시아 커피가 맛없게 느껴진 건 한국의 커피 수준이 세계적으로 향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도 15년 전에는 꽃향기가 나는 커피를 맛보기 힘들었다.
약배전 원두를 사용하는 카페도 드물어 집에서 생두를 볶고 게이샤 원두를 찾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질 좋은 원두를 사용하는 동네 카페가 발에 채인다.
발리의 많은 카페에서 롱블랙과 플랫 화이트를 팔았다.
관광객 중 호주 사람이 가장 많으니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른 것이겠지.
롱블랙은 아메리카노와 비슷하지만 양이 더 적고 풍미가 더 강하다.
플랫 화이트도 마찬가지. 카페 라떼와 비슷하지만 우유 대비 커피 비율이 더 높아 맛이 진하다.
호주에서 마시던 롱 블랙보다는 맛이 덜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코코넛 음료는 뭐든 맛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가 소나무라면 발리를 대표하는 나무는 야자수이기에 어디를 가든 코코넛이 넘쳐흘렀다.
카페에서 커다란 코코넛 열매에 빨대를 꽂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괜히 웃음이 났다.
가격은 커피와 비슷했다. 코코넛 아이스크림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이었다.
코코넛을 말린 과자는 바삭하면서도 코코넛 풍미가 가득했다.
야바 씨리얼과 더불어 말린 코코넛 칩은 빈땅 마켓에서 발리 최고의 기념품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귀국하는 날 캐리어를 씨리얼과 코코넛 과자로 가득 채운 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