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연봉 1억은 상징적인 숫자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예전보다는 그 의미가 희석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들이 받고 싶어하는 금액이다. 세금을 떼고 나면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확 줄어 깜짝 놀라는 금액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상징적인 숫자가 있다.
연봉으로 따지면 1300만원 정도다.
매달 100만원 월급을 주는 회사가 꿈의 직장이라는 얘기다.
인도네시아 인구는 약 2억 8천만 명으로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다.
그만큼 소득 수준도 편차가 크다.
인도네시아 중앙 통계국이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평균 급여는 307만 루피아(한화로 약 27만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월급을 많이 받는 직업은 금융이나 보험 부문으로 518만 루피아(한화 약 46만원)이다.
평균 월급이 가장 낮은 부문은 세탁, 미용, 수리, 동물 관리 등이 포함된 기타 서비스 부분으로 184만 루피아(한화 약 16만원)이다.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도시는 수도인 자카르타고 그 다음은 발리다.
최저임금도 지역마다 다른데 1위로 집계된 자카르타는 한화로 월 44만원을 받는다.
발리 시민의 평균 급여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직장인이라면 최소 월 40만원은 되지 않을까 추측한다.
돈 얘기를 길게 늘어놓는 건 택시비 때문이다.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근로자가 시간당 받는 임금이 적기에 저렴한 비용으로 기사님을 고용할 수 있었다.
발리에 머물며 일일 프라이빗 투어를 2번 신청했다.
우붓에서 북부 투어 일정을 짜서 클룩으로 10시간 동안 택시를 빌렸는데 총 비용이 8만원이었다.
기름값과 식사비는 포함이었고 팁은 별도였다.
정확한 시간에 숙소 앞에 도착한 기사님은 원하는 곳에 어디든 내려다 주었고, 우리가 그곳에 얼마나 머물든 주차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스미냑에서는 남부 투어를 했는데 12시간 택시를 빌리는 비용이 고작 4만 3천원이었다.
북부 투어 때는 높은 산을 올라야 해서 가격이 더 비쌌던 것 같다.
기본은 영어가 가능한 기사님이었지만 만 원 정도만 추가하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기사님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관광하며 한국어를 구사하는 발리 가이드를 종종 목격했는데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한국말을 잘하더라.
하지만 영어가 가능하다는 의미는 간단한 질문에 대해 간단한 대답 정도만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뒷자리에 앉아 회장님처럼 여행하는 건 좋았지만 어려운 점도 있었다.
관광지를 둘러볼 때마다 주차장에서 기사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주차장 주변 정자나 벤치 아래에는 기사들로 가득했다.
우리가 언제 오건 기사님은 늘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보거나 주무시는 것 같았다.
낀따마니 정상에 있는 카페에서 바투르 산을 바라보며 경치를 즐기고 있을 때도 마음 한구석엔 카페 밖에 앉아 있는 기사님이 떠올라 불편했다.
안되겠다 싶어 메뉴판을 들고 나갔는데 기사님이 나와 똑같은 커피 잔을 들고 쉬고 계셔서 안도했다.
가루다 공원에서는 천천히 걷고 구경하다보니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공원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싶었지만 기사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아 포기했다.
기사님의 시간을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빌리긴 했지만 편안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목적지에 내릴 때마다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뒤에 올께요 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심리적으로 부담이 훨씬 덜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기사님도 그 시간 동안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쉴 수 있었겠지.
하지만 발리는 처음 와본 곳이라 가는 곳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기에 정확한 시간을 알려 줄 수 없었다.
기사님은 기다리는 게 익숙하셨겠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게 익숙지 않았기에 어느 한 곳에서도 게으름을 피우며 늘어지게 머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