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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Oct 18. 2024

10. 자연과 표정

발리에서 기대했던 건 커피와 그림과 수영장이었다. 

아침마다 향긋한 커피를 마셔야지. 원시적이고 강렬하다는 그림을 실컷 봐야지. 오후 내내 수영을 하며 놀아야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막상 발리에 도착하니 조식에 딸려 나오는 커피는 매번 형편없었다. 

네카 미술관에는 좋은 그림이 많았지만 그 외에는 흥미로운 곳이 없었다. 

수영장은 오후 내내 수영을 하기에는 규모가 작았다. 


기대했던 것들이 실망을 안겨 주었지만 기대하지 않은 것에서 기쁨을 느꼈다. 

남편이 뜨갈랄랑 지역에 있는 발리 전통 계단식 논을 보러 가자고 했을 때 전혀 내키지 않았다. 

남해 다랭이 마을을 몇 번이나 다녀왔는데 여기서도 그걸 보자고? 싫어. 

거기 가면 멋진 인피니티 풀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하여 마음을 바꿨다.  


 뜨갈랄랑은 우붓에서 택시로 20분이면 도착한다.

 택시에서 내렸을 때 광대한 정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야자나무가 굉장했다. 

무성한 숲 사이로 계단식 논이 조성되어 있었다. 사자가 어슬렁거릴 만한 울창함이었다. 

정글 숲 맞은편에는 레스토랑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크래티아 우붓’에 있는 인피니티 풀에서 몸을 담그고(수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치를 구경했다. 

드레스를 휘날리며 발리 그네를 타는 관광객이 많았다. 

계단식 논 사이를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곳곳에 트래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었다. 

저녁 무렵에는 근처 레스토랑 ‘티스 카페’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했다. 

절벽 바로 옆에서 샹그리아를 마시며 원숭이를 용서한 것처럼 흡혈 모기를 용서했다. 


앞서 언급한, 교회에서 만난 제주도 부부에게 발리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낀따마니에 가보라고 했다. 

별 계획이 없었던 우리는 며칠 뒤 택시를 대절해 낀따마니로 향했다. 

낀따마니는 바뚜르 산과 호수를 아우르는 지역을 일컫는다. 

낀따마니 정상에서 바뚜르 산과 호수, 아궁산을 보고 있자니 스위스 루체른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야를 막는 구조물이 하나도 없어 바뚜르 산과 단독으로 마주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하루 종일 거기서 밥 먹고 차 마시고 놀다 와도 지겹지 않다는 제주도 언니 말은 사실이었다. 

발리에 다시 오게 되면 바투르 호수 근처에 숙소를 잡으리라 다짐했다. 


파도도 굉장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닷가에서 그렇게 높은 파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발리가 서핑의 천국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서핑하기 좋다는 양양 바닷가의 파도를 떠올리니 왠지 부끄러웠다. 

술루반 비치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카페에서 마가리타를 마시며 서퍼들을 구경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그린 ‘가나가와 해변의 거대한 파도’처럼 거대한 파도가 몰려왔다. 

패들링을 하며 바닷가로 나아가는 서퍼들이 거북이처럼 보였다. 

많은 거북이들이 보드에 의지한 채 둥둥 떠 있었다.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일어서서 멋지게 라이딩을 하는 서퍼들은 빗자루를 탄 마법사였다. 

스미냑 비치에서는 바다에 슬금슬금 들어가 파도타기를 몇 번 했다. 

파도가 세고 서핑족이 많아 수영은 금지라고 되어 있었다. 

사누르보다 파도가 셌다. 

사람들은 바닷물에 종아리를 담그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밀려오는 파도를 느꼈다. 

우리는 파도를 맞고 비틀거리면서도 즐거웠다. 


 그리고 미소가 있었다. 

발리에 관해 쓴 책마다 나왔던 표현 중 하나가 ‘천상의 미소를 가진 발리 사람들’이었다. 

사실일지 궁금했다. 천상의 미소까지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발리의 표정은 밝았다. 

시선이 마주치면 그들은 활짝 웃었다. 

레스토랑, 호텔, 상점, 택시 등에서 대화를 하는 경우가 생길 때마다 발리 사람들은 웃으며 말을 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우리가 관광객이라 더 친절했을 수도 있다. 

그러기엔 거의 모든 발리인의 표정이 환했다. 

금세 무표정으로 돌아갈지라도 웃는 게 먼저였다. 

미소는 금방 전염되었다. 

웃는 걸 좋아하는 나는 금세 발리 문화에 적응했고 아예 웃는 표정으로 걸어 다녔다. 

웃는 표정이 기본값이었다. 길을 비켜주며 웃었고 음식을 주문하며 웃었다. 

덥다고 짜증을 내면서도 얼굴은 웃고 있었기에 남편은 내 머리에 손을 짚기도 했다. 

환한 미소에 익숙해 지다보니 나중에는 어느 직원이 웃으며 잘 가라는 인사를 하지 않았을 때 서운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들의 미소를 한국에 가져오고 싶었다. 

발리에서 가장 부러웠던 건 그들의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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