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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Oct 07. 2024

2. 공물과 신앙

발리에서는 길을 걸을 때 바닥을 잘 살피며 걸어야 한다. 

부서진 보도블록이나 연석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짜루 때문이기도 하다. 

짜루는 발리인이 하계 신인 악령에게 바치는 공물이다. 

인도네시아 인구의 87%는 무슬림이지만 발리 섬에서는 주민 83%가 힌두교를 믿는다. 

무슬림은 13%, 카톨릭과 개신교는 2.46%다. 

힌두 왕조가 15세기에 이슬람 세력에 밀려 발리 섬으로 오게 되며 발리에만 힌두교가 살아남았다고 한다. 

주술, 불교, 샤머니즘과 결합한 발리 힌두교는 인도의 원조 힌두교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발리 어원인 ‘왈리(Wali)’는 산스크리트어로 ‘바치다’를 의미한다. 

발리 전체가 신께 바쳐진 섬이다. 

아침 산책을 할 때마다 제단에 피운 향 냄새가 코 끝을 스쳤다.

 비슈누, 시바, 가네샤, 하누만, 가루다 등의 석상을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발리인들은 아침마다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 

집 입구마다 작은 제단이 있어 얼핏 보면 사원처럼 보인다. 

천상의 신인 데와(Dewa)에게 올리는 짜낭은 제단 위에, 악령 부따(Bhuta)에게 바치는 짜루는 땅바닥에 놓는다. 

야자수 이파리를 엮어 만든 손바닥만한 바구니에 쌀, 꽃, 과자, 사탕, 담배 등이 들어 있다. 

발리에서 음식은 사람이 먹기 이전에 신께 먼저 바쳐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식사를 하기 전 기도를 하듯 발리인들은 아침을 먹기 전 공물을 바치는 것이다.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제물을 사용한다. 

발리인에게 돼지는 어두움과 악으로부터 자신과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동물이다. 

어린 돼지 속을 각종 양념으로 채운 후 꼬챙이에 통으로 끼워 불에 구운 음식을 바비굴링이라 하는데, 이 바비굴링은 신을 위한 최고의 제물로 간주된다. 

희생 제물이 되는 동식물은 다음 생에서 더 높은 계급으로 태어난다고 하니 돼지를 죽여야 하는 마음이 괴롭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그 비용이 비싸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빚을 지면서까지 제물을 드린다.


예전에는 의례 때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바비굴링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언제든 맛볼 수 있다. 

식당 앞에서 꼬챙이에 끼워진 통돼지가 뱅글뱅글 돌아가며 불에 구워지고 있는 풍경도 종종 보인다. 

이슬람 신자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에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맛보기 힘든 발리의 전통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아침마다 제단 앞에 손을 모으고 새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뜨끔한다. 

저들은 저렇게 열심히 신을 섬기는데 내 신앙은 너무 안일하지 않나 반성이 된다. 

신을 향한 사랑은 무슬림도 힌두교인 못지않다. 

주일이 되어 참석한 발리 한인교회에서 1년간 세계여행중인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제주도에 사시는 분들이었다. 

그분들은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건너온 참이었는데 그곳에서 새벽마다 잠을 설쳤다고 한다. 


무슬림은 어디서건 하루에 다섯 번 예배를 드린다. 

일출, 정오, 오후, 일몰, 밤이다. 

공항이나 호텔같은 웬만한 공공시설에서는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이 있다. 

무슬림은 여행을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메카를 향해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자카르타는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이니 사원 또한 많다. 

동틀 무렵부터 숙소 곳곳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확성기로 기도문을 낭독하는데 서로가 경쟁하듯 소리를 높여 매번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고 했다. 

일주일을 고생한 후 그들은 숙소를 정할 때 구글 지도 앱을 켜고 이슬람 사원 위치부터 확인했다. 


발리를 여행하며 신심이 두터운 가톨릭 신자들도 꽤 목격했다. 

해변에서 반바지만 입고 앉아있던 한 남성의 등 전체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화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마리아가 인자하게 미소 짓고 있는 팔뚝 문신도 가끔 보았다. 십자가 문신도 수두룩했다. 

옆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며 목소리를 높이던 덩치 크고 우람한 중년 남성의 핸드폰 바탕 화면에서도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셨다. 

헐벗고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의 팔과 등과 다리에서 성모 마리아를 발견할 때마다 얼굴을 살폈는데 그들은 모두 남미에서 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남아메리카의 종교는 가톨릭이 절대적이니 그럴만하다 싶었다. 

발리에서 여러 방식으로 신을 경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나도 그렇게 믿음의 길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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