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낸다.
과일을 깎고 있으니 모과도 일어난다.
식탁에 앉은 모과는 독서대를 놓고 책을 펼친다. 눈 뜨자마자 독서라니.
남편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절대 아니었다.
모과는 공부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서는 책을 읽지 않는 어린이였다.
책은 재미없고 따분하다는 생각을 가진 어린이였다.
책만 펼치면 잠이 온다는 어린이였다.
책을 싫어하던 어린이가 자라 책을 싫어하는 어른이 되었다.
책을 싫어하던 어른은 하필 책을 좋아하는 어른과 결혼하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의 사명은 분명했다.
모과에게 독서의 기쁨을 알게 하라.
주말마다 그의 손을 이끌고 도서관에 갔다.
책 노출을 늘리는 게 우선이었다.
자, 책 제목이라도 읽어봐.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을 딱 한권만 찾아봐.
내가 한 시간 동안 19권의 책을 고르는 동안 모과는 단 한 권의 책을 고르기 위해 고심했다.
모과가 골라온 책은 아무리 이상한 책이어도 무조건 칭찬했다.
와. 이런 책도 있었어?(그 많은 책 중에 하필 이런 걸...)
재밌을 것 같은데?(정말 안목이 없긴 하구나...)
읽어보고 어떤 내용인지 알려줘.(내용이 있을 리가 없지...)
서점에도 종종 갔다. 산책길에서도, 여행지에서도 서점이 보이면 우선 들어갔다.
모과는 툴툴거리며 따라 들어왔다.
모과가 가판대에 누워 있는 책 제목을 찬찬히 읽어가는 동안 나는 벽에 꽂힌 책들을 살폈다.
집에서도 식탁 위에 책을 쌓아 올려두었다.
밥 먹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책등에 시선이 가게끔 배치했다.
내가 깔깔거리며 읽은, 진짜 재밌었던 책은 모과에게도 읽어보라고 권했다.
진짜 재밌는 책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무리 멋진 책을 읽어도 모과의 평가는 ‘괜찮네’가 전부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괜찮다는 건 싫지는 않다는 뜻이니까.
그러기를 15년, 모과는 이제 책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바뀌었다.
모과는 책 한 권을 고르면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젠 나처럼 이 책과 저 책을 함께 읽는 방법을 안다.
모과는 자기가 고른 책이 재미없다고 느껴도 끝까지 읽으려 노력했다.
이젠 별로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히 덮어버린다.
모과는 작은 소음만 들려도 집중이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이젠 내가 우당탕탕 설거지를 해도 책 속으로 빠져든다.
모과는 자신은 직장인이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항변했다.
이젠 내가 과일 샐러드를 준비하는 5분 동안에도 책을 펼친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데, 함께 살다 보니 새 사람으로 바뀌기도 한다.
책 읽는 모과를 보며 생각한다.
독서란 뭘까. 왜 나는 책벌레가 되었을까? 책을 읽음으로서 얻는 유익이 무엇일까?
돈? 책을 통해 돈도 모았다.
경제 분야의 책을 잔뜩 읽으며 자산 모으는 방법에 대해 배웠고 종잣돈을 모아 실천했다.
사랑? 책을 통해 사랑도 얻었다.
심리 분야의 책을 잔뜩 읽으며 남자의 심리에 대해 배웠고 어떤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실천했다.
건강? 책을 통해 건강도 지켰다.
건강 분야의 책을 잔뜩 읽으며 식습관과 운동 방법에 대해 배웠고 식단을 바꾸고 꾸준한 운동을 실천했다.
책을 읽음으로 삶이 얼마나 풍성해 질 수 있는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다양한 장르의 책을 통해 매번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유익은 일상의 소중함이다.
지금 살아 있어 감사하다는 것.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것.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기쁘다는 것.
오늘 하루도 내게 공짜로 주어졌다는 것.
감사의 말은 하면 할수록 늘어난다는 것.
그런 감정을 저자가 나누어주는 글 속에서 문득 느낀다.
그러니,
마음이 무뎌질 때, 삶이 지루하거나 의미 없다고 생각될 때 책을 펼쳐보자.
책은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