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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엄마의 엄마 이야기

by 유자와 모과
엄마사진.jpg


"유자야, 엄마가 엄마한테 쫓겨났던 얘기 말했었나?

그러니까 니 외할머니가 엄마를 쫒아낸거지.

내가 고등학생 때였는데 엄마가 많이 아팠어.

아빠는 일찍 돌아가셨지. 오빠들은 돈 벌겠다고 서울 올라갔지.

나랑 엄마랑 초가집에 둘이 살고 있었거든.


엄마가 얼마나 아팠냐면 한여름에도 춥다고 솜이불 덮고, 돌을 뜨겁게 데워 배 위에 올려놓고도 오들오들 떨었다니까.

하도 아프니까 엄마가 점집에 찾아간 거야.

무당이 점을 치더니 신굿을 받으면 아픈 게 낫는다고 그러더래.

받을 거냐고. 엄마는 그러겠다고 했어.

그러자 무당이 그랬대.

근데 그 집에 예수쟁이가 한 명 살아서, 귀신이 들어왔다가도 다시 나가고 들어왔다가 다시 나간다고.

신굿을 받으려면 예수쟁이를 집에서 쫒아내야 한다고.


그때 내가 교회에 다녔거든.

근데 난 예수가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어.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건 믿었지.

근데 성령이 뭔지도 몰랐고 믿음도 없었어.

그냥 주일마다 교회 나간 거 뿐이라니까.

근데 내 안에 예수가 있었다니. 얼마나 놀라워.

엄마 말 듣고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엄마는 자기가 죽으면 나도 고아가 될테니 그것보다는 따로 사는 게 낫겠지 않냐고 물었어.

난 엄마가 무서워서 아무말도 못했고.

엄마가 시내에 방을 구해줬거든.

무당이 곡물 한 톨 주지 말고 내쫒으라고 해서 맨손으로 쫒겨 나왔어.

거기서 혼자 학교에 다녔다니까. 뭘 먹고 살았나 몰라.


엄마는 방 한 켠에 신당을 차렸어.

근데 처음엔 몸이 낫는가 싶더니 다시 아프기 시작한거야. 계속 아프지.

그제야 엄마는 자기가 귀신한테 속은 줄 깨달았대.

어느 날 엄마가 다시 집에 들어오라고 하더라고.

가보니 집안이 깨끗해졌어.

엄마가 신당을 망치로 다 깨부수었다고 하더라.

그 뒤로도 엄마는 시름시름 앓았어.


어느 날 엄마가 나보고 교회에 데려다 달라고 하는거야.

엄마가 교회에 간다니 내가 얼마나 신났겠어.

엄마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어.

그리고 몇 달 뒤에 돌아가셨는데 유언이 뭐였는지 아니?


자기가 젊을 때 옆집 엄마가 교회에 가자고 하면 그랬대.

지금은 바빠서요. 얘들 다 키우고 갈게요.

근데 그때 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면서, 니 오빠들한테 꼭 예수 믿으라고 하라고,

나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말라고,

엄마는 귀신이라면 지긋지긋하니 니 오빠들한테 제사상 절대 차리지 말라고 하라고.


그게 유언이었어.

근데 오빠들은 그 말을 지금까지 안 믿는다.

내가 예수쟁이라 지어낸 줄 안다니까.

내가 얼마나 답답하겠니.


그때 엄마 나이가 너보다 어렸겠구나.

불쌍한 우리 엄마. 내가 그때 철이 없어서 효도를 못했어.

엄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지는 몰랐지.

그렇게 젊은 나이에.

평생 후회가 돼."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과 봄 여행을 떠났다.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예전에 하고 또한 옛날 옛적 이야기를 또 하고 있다.

이 에피소드는 105번째 듣는 것 같다.

이제야 기록해 본다.

엄마의 엄마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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