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정말 잘한 선택이 있다면 신혼집을 반지하에서 시작한 거다.
나와 모과 둘 다 여행을 좋아한다. 결혼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모은 돈을 야금야금 써버렸다.
돈은 없었지만 사랑은 있었다.
돈 좀 모으고 결혼하려 했다면 아마 오랫동안 결혼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난한 상태로 결혼하기로 했다.
젊었기에 가난이 아무렇지 않았다.
스튜디오 사진은 찍지 않았고 액자도 하지 않았다.
결혼식 비용은 축의금으로 해결했고 신혼여행도 소박하게 다녀왔다.
모과가 가진 돈은 이 천만원. 당시 서울에 있던 모과 혼자 신혼집을 보러 다녔다.
적은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대출을 더 받을까 고민하자 부동산 사장님이 말했다.
“무리하지 말고 원래 계획했던 돈으로 집 구하세요. 나중에 돈 벌어서 좋은 데 가면 되지. 내가 돈 맞춰서 구해줄게.”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전세대출을 받아 5천 5백만원에 10평짜리 반지하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지어진지 30년이 넘은 빌라였다.
내가 가진 천만원으로 혼수를 마련했다.
집도 작고 내 집도 아니었기에 좋은 가구 가전이 필요 없었다.
대출금으로 한 달에 10만원이 나갔다. 거의 공짜로 서울에서 산 셈이었다.
6년 동안 그곳에서 둘 다 대학원을 다니고 등록금을 냈다.
여행을 다니고 돈을 모았다. 신입사원 모과 월급만으로 그 모든 게 가능했다.
관리비도 안 내고 대출 이자도 적고 자동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경기도로 이전하며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기기로 했다.
대출을 받아 첫 집을 구입했다.
신혼집에서 가져온 물건은 가전 몇 개가 전부였다.
집 규모가 세 배 커졌기에 예전 가구들이 전혀 맞지 않았다.
에어컨, 침대, 옷장, 소파, 책장, 커튼, 테이블 모두 그대로 놓고 왔다.
새로 들어오시기로 한 세입자가 다 쓰겠다고 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800만원 정도다.
6년 동안 800만원을 쓴 셈이니 나쁘지 않은 소비였다.
새 집에서는 7년을 살았다. 물건은 최소한으로 두었다.
침대, 탁자, 책장, 소파, 대형 거울, 커튼을 새로 구입했다. 천만원이 들었다.
남편이 있는 부서가 서울로 이전 계획이 있어 우리도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기기로 했다.
새로 산 집은 평수가 줄어들어 소파를 팔아야 했다.
흠집 하나 없는 가죽 소파였지만 80% 할인가에 팔았다.
원목 책장은 90% 할인으로 겨우 팔았다.
새로 이사한 집은 붙박이장이 하나밖에 없어 작은 옷장을 구입했다.
부엌에 놓을 틈새 수납장도 샀다.
1인용 암체어도 필요했다.
새 집에 맞는 새 가구를 사느라 2백만원을 썼다.
집이 크든 작든 살림 규모를 늘리지 않는 게 좋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7년 후 작은 평수로 이사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소파는 저렴한 걸 선택했을 거고 책장은 사지 않았을 거다.
첫 집에서 더 오래 살 줄 알았다.
살림 구입은 집값에 비하면 사소한 비용이지만 물건은 감가상각이 되기에 사면 살수록 손해다.
한번 산 가구나 가전제품은 아까워서 팔거나 버리기도 힘들다.
없으면 없는대로 살아지니 덩치 큰 물건을 구입할 땐 심사숙고하자.
짐이 적으면 이사비용도 극적으로 절약된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할 땐 이사비용이 30만원이었다.
다시 경기도에서 서울로 이사할 땐 이사비용이 140만원이 나왔다.
짐이 늘어서가 아니었다. 보관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달 보관비용은 30만원, 짐을 빼서 창고에 넣는데 55만원, 짐을 창고에서 빼서 서울로 이동하는데 55만원이 추가로 들었다.
두 번의 이사 모두 짐은 우리가 싸고 이사업체는 옮기기만 하는 조건이었다.
매번 이사는 한 시간만에 끝났다.
살림이 적으니 넣고 빼고 할 것도 없었다.
이번에 이사를 오며 살림을 다시 정리했다. 잔짐을 줄였다.
예전 신혼집보다 짐이 적어졌다.
짐이 줄어드니 집을 관리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자신감은 더 올라간다.
만약 회사가 서울로 이전을 안한다고 결정나면 몇 년 살다 이 집을 전세 주고 회사 근처로 다시 갈 생각이다.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으로 대출을 갚고 남은 돈으로만 전세를 구하려고 한다면 평수를 더 줄여야 한다.
예전이라면 둘이서 20평대는 살아야 스트레스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림이 더 간소해지니 그보다 적은 평수에서도 쾌적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화장실은 필연적으로 하나일테니 그 부분이 아쉽겠지만).
적은 평수를 선택하면 대출금으로 나갈 돈이 없으니 몽땅 저축할 수 있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
살림이 적을수록 돈이 불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