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고칠 때 난이도 높은 공간들이 있다.
화장실과 부엌이다. 배관 시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타일을 걷어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다행히 전주인이 화장실을 리모델링 해 놓아 내가 손댈 부분은 없었다.
그분이 말하길 처음에는 덧방을 했다고 한다.
덧방이란 기존 타일 위에 새 타일을 접착제로 붙이는 걸 말한다.
그런데 아래층으로 물이 새서 바닥을 다시 뜯어냈다.
타일로 마감되는 부분은 덧방을 하든 뜯어내든 각오가 필요하다.
나도 부엌을 고치며 마음고생이 많았다.
소유권이 넘어오기 전까지는 그 집이 내 집이 아니기에 집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한 두 번 치수를 재기 위해 양해를 구하고 방문하는 게 전부다.
나는 상부장 없이 침니 후드를 달 계획이었다.
침니란 아래쪽은 삿갓 모양처럼 넓고 위쪽은 좁은 굴뚝 형태의 후드를 의미한다.
침니 후드를 달려면 후드관이 어디로 빠지는지 미리 확인해야 한다.
후드를 매달 벽은 옹벽이어야 한다.
아파트에서 옹벽은 튼튼한 콘크리트 벽을 의미한다.
석고보드 벽은 얇고 넓은 판넬 형태로 만든 가벽이다.
내벽이나 천장 마감재에 주로 사용된다.
벽을 두드렸을 때 통통 하는 소리가 들리면 석고보드다.
우리 집 후드관은 천장 위가 아닌 측면으로 빠지는 구조라 후드관을 가릴 박스도 만들어야 했다(다행히 다이소에서 산 우드폼으로 쉽게 해결했다).
부엌 전면은 콘크리트였는데 측면이 석고보드였다.
철거를 하고 나니 벽이 엉망이 되었다.
이틀 후 타일 공정이라 당장 석고보드를 새로 붙여야 했다.
도움이 필요할 땐 작업하는 분께 물어보라.
분야가 달라도 인테리어 공사 현장에서 일해왔기에 답을 안다.
철거 사장님께 도움을 청했다.
"목공 안 들어온다고요? 그럼 구하면 되지. 어디보자. 석고보드는 두 장이면 되겠고,
한 두 시간이면 끝날 일이니 20만원에 올리면 될 거예요. 보드값 포함해서.”
바로 인기통에 글을 올렸다. 10분이 지나도 댓글이 없었다.
초조해진 마음에 25만원으로 가격을 올렸다.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알고보니 쪽지로 연락이 여럿 와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당근에 같은 내용으로 판매 글을 올렸다. 바로 연락이 왔다.
신촌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하는 사장님이었다.
얼떨결에 만난 그분은 귀인이었다.
집 수리하다 어려운 일 있으면 부르라고 했다.
그 말대로 했다.
그분 덕분에 조명도 달고 복잡한 전선 문제도 해결했다.
안방 화장실 거울과 선반도 달았다.
천장이 콘크리트라 부엌 조명 위치를 옮기려면 까대기도 해야 했다.
까대기는 콘크리트 벽에 홈을 파서 전선을 그 안에 쏙 집어넣는 거다.
소음도 엄청나고 홈 파는 것도 쉽지도 않다.
귀인께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까대기 작업을 해 주었다.
공사 일정표에는 반드시 아무 작업 없는 날을 넣어야 한다.
나는 그걸 몰랐다.
셀인 카페에서 누군가 조언을 했지만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공사를 2주간 했는데 매일 공정이 진행되도록 시간표를 짰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될 줄 알았다.
철거 끝나면 샷시, 샷시 끝나면 타일, 타일 끝나면 필름, 필름 끝나면 탄성코드.
전문가들이 시간 맞춰 끝내줄 텐데 어려울 게 뭐 있나 싶었다.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철거하자마자 목공 작업 해야 할 일이 생긴다.
샷시를 뜯어내자마자 목공 작업 해야 할 일이 생긴다.
탄성코트가 추위 때문에 마르지 않아 이틀 내내 난방기를 돌려야 할 일이 생긴다.
부엌 하부장 조립 물품과 원목 상판을 실은 트럭이 도착했는데 바닥 작업을 하고 있어 한 장 한 장 베란다에 옮겨야 할 일이 생긴다.
공정이 한 두 시간 애매하게 겹쳐 서로 다른 기술자가 신경전을 벌이는 일이 생긴다.
별 탈 없이 기간 내 공사가 마무리 된 건 운이 좋아서였다.
하나만 삐끗했어도 전체 일정이 틀어져 애를 먹었을 거다.
그러니 부디 일정을 넉넉하게 잡으시길.
공사 기간 내내 자잘한 수리를 도와주던 귀인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문제없이 잘 끝내셨네요. 공사 하다 중단되는 경우 많아요. 수두룩해요.
집주인이랑 기술자랑 싸워서. 왜냐고요? 집주인이 자꾸 갑질하니까.
작업하는 사람은 그게 싫은거지. 그냥 일하다 가버린다니까요.
공사 미뤄져서 우는 집주인 많이 봤어요.”
운 좋게 제때 공사를 마치는데 내가 조금이나마 기여한 부분이 있다면 매일 공사 현장에 출근한 거다.
아침마다 부모님 댁에서 서울까지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왔다.
작업자분들께 인사한 후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와 간식을 샀다.
근처에 있을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다.
오후에 음료수를 사서 다시 방문. 그때쯤이면 어느 정도 공사가 마무리되는 중이다.
빗자루를 들고 바닥 청소를 했다.
쓰레기는 모아 비닐봉투에 넣고 꽉 찬 봉투는 바로 수거함에 넣었다.
사실 뒷정리는 안 해도 된다. 작업하시는 분들이 한다.
하지만 할 일도 없고 내 집이기도 하니 정리를 도왔다.
근데 다들 이 부분을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풀풀 나는 먼지를 뒤집어쓰며 쓰레기를 치우니 나를 착한 주인으로 봐줬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면 다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온다.
마음 같아서는 일이 잘 마무리 되는지 지켜보고 싶지만 작업 하시는 분들이 불편해 할 거다.
보통 작업은 오후 5시면 마무리된다.
빈집이 되면 다시 청소를 시작한다.
다음날 오실 분들을 위해서다.
수월하게 작업하실 수 있도록 쓸고 줍고 닦는다.
아무리 공사현장이라도 정리가 되어 있으면 그분들도 함부로 작업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현장에 있었기에 긴급한 상황이 생길 때 간신히 해결할 수 있었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려면 스스로를 현장 소장이라고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