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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방문

by 유자와 모과
은평 커피.jpg


몇 주 전부터 새벽 3시에 기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무례하다.

기침은 문을 쿵쿵 두드려 잠든 나를 깨운다.

모른 척하고 다시 잠들려 하면 더 크게 두드린다.

옆에서 자던 모과도 깨어난다.

- 무슨 일이야? 괜찮아?

- 괜찮아. 어서 자. 내가 해결할게.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다.

- 원하는 게 뭐니?

- 그냥. 너랑 차 한잔 하려고.

- 낮에 와도 되잖아.

- 낮엔 나도 쉬어야지.


기침은 뻔뻔하다.

뜨거운 물을 끓여 생강청을 탄다.

기침이 가장 좋아하는 차다.

기침이 차를 마실 동안 암체어에 기대어 기다린다.

처음엔 따뜻한 물을 건넸다.

기침은 나의 성의 없음을 탓하며 오래 머물렀다.

생강차를 대접하면 기침은 금세 자리를 뜬다.


새벽마다 계속되는 횡포에 지쳐 병원을 찾았다.

알약을 먹으면 현관문에 투명막이 쳐진다.

새벽에 기침이 문을 두드려도 들리지 않는다.

며칠을 푹 잤다.

문이 막히니 나 역시 꼼짝할 수 없었다.

기운이 더 빠지는 것 같아 약 먹는 걸 그만두었다.


그날 밤 기침은 방문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어느 집에 가서 난리를 쳤을까?

기쁨도 잠시, 기침이 다시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예전보다는 약해졌지만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 말해봐. 내가 뭘 잘못한거야? 너랑 한 번도 친한 적 없었는데.


기침은 말없이 차만 홀짝거린다.

찬바람만 불어도 기침하는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기침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사계절 내내 손수건이나 머플러를 두른다.

기침은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는 기침을 미워한다.

영원한 짝사랑.


딴 생각을 하는 사이 기침은 자리를 떴다.

그리고 기침의 방문도 끝났다.

새벽에 눈을 떠봐도 밖은 잠잠하다.

기침이 마시고 간 생강청만 두 병이다.


기침은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새벽마다 낯선 집을 방문하여 생강차를 홀짝거리고 있을 기침을 그려본다.

다신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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