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나이가 들며 귓구멍이 점점 좁아져 소리가 예전처럼 들리지 않아서였다.
의학적으로 표현하면 후천성 외이도 협착증 때문이다.
귀를 전문으로 다루는 병원을 찾았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당일에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건물 한 동 전체가 병원이었다.
보청기 센터, 수술실, 입원실, 접수실, 청각재활센터, 귀 클리닉으로 나뉘어 있다.
예약된 시간에 맞춰 병원을 찾는다.
아빠가 여러 청각 검사를 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하고 싶은 의욕도 없다.
병원에서는 시간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떠올려서도 안된다.
대기실에 앉은 사람도 의욕 없긴 마찬가지다.
침울한 표정이 대부분이다.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다.
모두 조용하다. 활발한 건 간호사들 뿐이다.
병원은 기다림의 장소다.
검사를 기다리고 진료를 기다린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은 생기를 잃는다.
하얀 린넨 바지에 로퍼를 신은 중년 남성도, 모시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르신도 아무렇게나 의자에 앉는다. 머메이드 스커트를 입고 5센티 구두를 신은 젊은 여성의 걸음도 급격히 느려진다.
대기하는 환자들은 모니터에 뜬 번호와 진료실 문을 번갈아 바라본다.
진료실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환자들은 초조하면서도 따분해진다.
진료실에서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진료가 끝날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안고 나온다. 부모는 애써 담담한 표정이다.
아이도 모든 과정을 잘 이겨낼 것이다.
새로운 잠재적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한다.
어떤 증상으로 왔냐고 묻는 간호사에게 새 환자는 자신의 병을 이야기한다.
이명이랑 난청 때문에요. 어지러움이 심해서요. 중이염이 있어요. 고막이 이상해서요.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지 모두 들을 수 있다.
강요된 고백이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간호사 귀에 속삭일 수는 없을까? 글로 적는 건 어떨까?
대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과 그의 고통을 비교해 본다.
고작 귀일 뿐인데 이렇게 다양한 병명이 있다니.
평생 존재감 없던 귀가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니.
누군가는, 고작 귀 때문에 그러는거야? 반응할 수도 있다.
어떤 이에겐 별것 아닌듯 보이는 고통이지만, 당사자는 일상을 견디기 힘들 만큼 아픈 상태다.
주관적 고통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문을 열고 새 환자가 들어오며 말한다.
청주에서 왔어요. 언제쯤 진료 가능할까요?
예약하지 않은 환자다.
간호사는 3~4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준다.
어떻게 빨리 안될까요?
잠시 후 또 다른 환자가 들어오며 말한다.
고흥에서 왔어요.
역시 예약하지 않은 환자다.
간호사는 웃으며 말한다.
멀리서 왔으니 빨리 해달라는 거죠? 3~4시간은 기다린다고 생각하세요.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러난다.
긴 하루가 될 것이다.
진료받기를 원하는 선생님이 있냐고 묻는 간호사 말에 환자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가장 잘하시는 선생님은 누군가요?
가장 잘하시는 선생님은 시간에 따라 바뀐다.
간호사는 스케줄을 보고 환자를 배치한다.
마침내 아빠 검사가 끝났다.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할 차례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아빠 귀의 상태를 설명한다.
우리는 궁금한 점을 묻고 의사는 대답한다.
수술을 해도 획기적으로 나아지는 건 없다.
몇 년 후에는 보청기를 끼어야 한다.
아빠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병원을 나서니 햇살이 뜨겁다. 여름이구나.
계절도 잊어버린 시간이었다.
병원 블랙홀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