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매일 일월 호수를 걷는다.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는 할머니를 종종 마주친다.
어느 날 엄마는 말을 걸었다.
할머니는 늙은이한테 아는척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흔 살인 할머니는 엄마 나이를 물었다.
- 일흔 두 살이요.
- 아직 애기네. 애기.
안산 둘레길 산책을 나섰다.
천천히 걷는 할머니들을 지나 앞으로 나아간다.
할머니 한 분이 친구들에게 말한다.
- 그 할아버지 있지. 막걸리랑 붕어빵 사 가지고 가던. 나이 얼마 안 먹었더라. 82인가.
- 우리보다 한 살 적네.
나와는 나이 차가 꽤 나는 친한 언니가 성형외과를 방문했다.
미국 사는 지인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목주름 제거 수술을 받는데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의사는 언니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진단을 내렸다.
- 턱이 작아서 노화가 빨리 오겠어요. 잘게 다 쪼개서 올려야 되요.
매년 수십 종의 꽃과 나무 이름을 외운다.
언제부턴가 다음 해가 되면 잊어버린다. 계속해야 할까?
모과가 대답한다.
-그러니까 그냥 즐겨. 예쁜 노랑꽃이구나, 예쁜 하얀꽃이구나 그러면서.
처음엔 편도선이 붓더니 가라앉을 때쯤 기침이 나기 시작한다.
기침이 잦아들려 하자 이젠 몸살이다. 일주일이 지났다.
마흔 넘으니 감기도 잘 낫지 않는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새벽 3시. 뻐꾸기가 뻐꾹뻐꾹 운다. 웃는 건가.
고요 속에서 조용히 퍼지는 음악.
차분하면서도 규칙적인 소리가 마음을 다독이다.
아픈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생각한다.
청매실이 나오는 계절이다.
그동안 시어머님이 장아찌를 주셨다. 작년부터인가 어머님이 매실 까는 게 힘들다고 하신다.
요리 전문가이신 어머님도 이젠 하나 둘 손을 놓기 시작한다.
나 역시 과육만 도려낼 자신이 없다. 매실 장아찌를 포기할 수도 없다.
시중에 파는 장아찌를 사는 건 주저된다.
사이즈가 다른 매실 작두 두 개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그러다 씨앗을 제거한 청매실을 발견했다.
씨앗 있는 매실에 비해 두 배 넘게 비싸다.
체력이 약하면 돈을 써야 한다.
유리병에 매실과 설탕을 섞는다.
매실이 설탕물 위로 둥둥 떠오른다. 누름돌로 누른 후 냉장고에 넣었다.
나이 들어도 매실 장아찌를 만들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안도감이 든다.
시간은 쉬는 법이 없다.
세월은 흐르고 몸은 낡아간다.
미용실에 다녀온 모과 얼굴이 쉼표처럼 보인다.
눈가에 자잘한 주름은 있지만 쉼표처럼 산뜻한 표정이다.
몸이 약해질수록 마음에 물을 줘야 한다.
마음을 윤기나게 닦아야 한다.
피부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지만 마음은 통통 튀게 할 수 있다.
남이 해줄 수는 없다. 다른 삶과 비교만 하지 않아도 마음은 가볍다.
오래 살아야 100년뿐인 인생,
자신의 삶에 귀 기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