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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좋은 사람 되는 법

by 유자와 모과
카페 삼청동.jpg


신혼이었다. 회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모과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휴지 뭉치였다.

휴지 안에는 체리 한 알이 들어 있었다.

안주로 나온 과일을 먹으며 모과는 생각했겠지.

유자도 체리 좋아하는데.

그 뒤로 체리를 먹을 때마다 휴지에 곱게 쌓인 체리 한 알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모과가 팀에서 한우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투뿔 한우 안심 한 덩이가 남았다. 다들 더 이상은 못 먹겠다고 했다.

모과는 그걸 포장해서 가져왔다.

비닐봉지를 들고 지하철을 탔다.

다음날 혼자 고기를 구웠다.

고기가 입에서 녹는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먹는 데 관심이 많다.

새로운 음식 맛보는 것도 좋아한다.

먹는 데 관심 없던 모과는 나를 만나 관심이 생겼다.


모과는 어딜 가든 자신에게 주어진 몫 중 가져올 수 있건 가져온다.

회사 동료들이 종종 해외여행 기념품으로 돌리는 쿠키, 초콜릿, 사탕이 내 손에 들어온다.

누군가 모과에게 과자를 건네면 거기서도 내 몫을 떼어 가져온다. 십일조처럼.

우리는 쫀드기 하나도 나눠 먹는 사이다.

집에서 책을 읽다 혹은 글을 쓰다 심심해지면 모과가 물어다 놓은 간식을 뒤적거린다.


최근 몇 주 목감기에 걸려 고생했다.

기침이 이렇게 오래 간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가벼운 병도 쉽게 낫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모과에게 선언했다.

- 이제부터 과자 안 먹을래. 회사에서 아무것도 가져오지마. 자기 다 먹어.

모과는 알겠다고 했다.


다음날 퇴근한 모과는 주머니에서 과자 하나를 꺼냈다.

- 안 먹겠다고 했잖아. 왜 가져왔어?

- 이건 못 먹어봤을 거 같아서.

뭔가 보니 우도땅콩초코찰떡파이였다.

못 먹어봤다. 그럼 이건 예외로 하자.


그 다음날은 친구를 만났다. 3년 전 교회에서 알게 된 친구다.

작년부터 한 달에 한 번 만나 밥 먹고 차 마시며 우정을 쌓는 중이다.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과자 한통을 건냈다.

- 이거 빈츠 말차맛인데 이번에 콜라보로 나온거야. 안 먹어봤을 것 같아서.

안 먹어봤다.

친구는 과자를 먹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을 알 리 없겠지.


집에 돌아와 간식함에 과자를 담았다.

빈츠 말차맛을 먹으며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어딘가에 담아 그에게 주면 된다.

쿠키 하나, 카라멜 한 통, 음료수 한 병이면 충분하다.


과자를 끊겠다는 다짐은 잠시 보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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