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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도쿄에 가면

by 유자와 모과


- 이번에 도쿄 디즈니랜드 가볼까? 웬만한 데는 다 가본 것 같아서.

- 거긴 왜. 얘들 가는 곳 아냐? 에버랜드 가면 되는데.


우리 집 여행 계획 담당은 모과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알려주면 모과는 그곳을 포함해 일정을 짠다.

환전, 투어 예약, 유심 구입 같은 자잘한 일도 모과가 처리한다.

런 면에서 나는 게으르지만 주제 파악은 잘하기에 모과가 가자는 대로 가고 하자는 대로 한다.


그래도 놀이동산은 너무한 거 아냐?

모과는 꼭 가고 싶은 건 아니라면서 디즈니랜드 영상만 찾아보고 있다.

그래 가자. 안 가본 곳이니 새롭긴 하겠지.

모과는 거기가 테마파크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설명하며 우리에겐 디즈니씨가 나을 것 같다고 한다.

알게 뭐람. 가고 싶은데로 가.


2주 후, 오전 10시. 우리는 도쿄 디즈니씨 매표소 앞에 서 있다.

짐 검사도 받아야 한다. 삼각김밥 같은 가벼운 음식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

나보다 큰 크로스백을 멘 모과는 검사 없이 통과시킨다.

뭐지? 먹을 건 주로 여자가 챙길 거라 생각해서? 한국이라면 이유를 물어봤을 텐데.

비수기라 금방 통과한다.


광장을 지나 테마파크 안으로 들어선다.

와~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는 순간 떠오른 생각은 하나다.

‘에버랜드 어쩌지.’


이렇게 규모가 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기대가 없었기에 놀라움은 더 크다.

바다 위에 배가 떠 있고 산꼭대기에서는 화산이 폭발한다. 거대한 성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리알토 다리가 있고 공중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이 모든 걸 인공으로 구현해 놓았다.

압도적 규모다.

진짜처럼 보이는 가로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짜다.

일 년 내내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동화 속 도시를 만날 수 있다.


비수기라지만 놀이기구를 타려면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기구마다 돈을 더 내고 프리패스를 구입할 수 있다.

입장료만 일 인당 9만원인데 그럴 수 없지.

구경하다 짧은 줄이 보이면 타기로 한다.

총 7개의 기구를 체험했는데 나중에 후기를 찾아보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가장 오래 기다린 시간은 50분.

기구를 타면, 제대로 된 4D는 이렇구나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체험도 멋졌지만 가장 재밌었던 건 건 사람 구경이었다.

90%의 사람들이 머리띠를 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부터 꼬부랑 할머니까지.

미키 마우스 귀를 베이스로 한 머리띠가 가장 많았다.

팅커벨, 엘사, 라푼젤, 더피, 쉐리메이 머리띠도 있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머리띠를 하고 있어서 매표소 앞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걸 우리만 못 본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머리띠 가격은 평균 18,000원.

머리띠는 모두가 구입하는 기본템이었다.


다음으로 많은 건 가방에 다는 키링과 가방끈에 다는 인형이었다.

집게가 있어 어깨에 매달아 놓을 수 있었다.

어깨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동물 모양 인형은 정말 귀여웠다.

인형은 마치 애완동물인양 주인 어깨 위에 앉아 세상구경을 하고 있었다.

디즈니씨를 나서는 순간 하고 다닐 용기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살 수는 없었다.


팝콘 통도 인기 많은 아이템이었다.

둘 중 하나는 팝콘 통을 손에 들고 있었다.

말 그대로 팝콘을 담는 통이었는데 캐릭터 통이라는 게 달랐다.

더피, 젤라토니, 엘사, 라푼젤, 피터팬 팝콘통이 있었다.

그 중에선 불이 들어와 랜턴처럼 쓸 수 있는 통도 있었기에 아이라면 무조건 사달라고 떼를 쓸만한 아이템이었다.


그 밖에도 도날드덕, 데이지덕, 미키, 미니가 그려진 모자. 티셔츠, 가방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수천 명이었다. 나 역시 손가락 두 개 크기의 유리 구두 하나를 구입했다.

삼 만원 정도.

아무 짝에 쓸모없는 미니어처이지만 실물을 보면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구두였다.


테마파크 곳곳에 기념품 샵이 포진해 있다.

가게마다 파는 품목이 조금씩 다르다.

그 점포에서만 파는 제품도 있다.

지금 아니면 못산다는 마음이 든다.

인간 심리를 이용한 영리한 방법이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디즈니씨 하루 평균 방문 인원은 3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들이 기념품으로 쓰고 가는 돈이 얼마일까? 거기에 식음료와 숙박을 더하면?

이 정도 매출이면 대한민국도 도전해 볼 만한 사업 아닐까?


테마파크는 기분 좋고 유쾌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날은 더웠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먹고 떠들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도 피터팬을 타겠다고 끝도 없이 긴 줄에 합류했다.

나는 기다리다 지쳐 힘들다고 툴툴거렸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이 정도 기다림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가족 연인 친구와 떠들고 사진을 찍고 팝콘을 먹었다.

테마파크에서는 모두가 성인군자가 되는구나.

그들의 긍정적인 태도에 나만 머쓱해졌다(피터팬 네버랜드는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은 옷과 신발로 맞춘 여자들도 가끔 눈에 띄었다.

액세서리와 화장까지 맞춘 두 명이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걸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 입장할 땐 한 바퀴 둘러보고 오후에 나오면 되겠지 생각했다. 별 거 있겠어.

우리가 밖을 나선 시간은 마감 시간인 밤 9시.

전체를 다 돌아보지도 못했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도쿄 디즈니씨. 테마파크가 감동을 줄 수도 있구나.

다음에 도쿄에 오게 되면 반드시 디즈니랜드에 가겠다고 모과에게 선언했다.


도쿄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를 만났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오사카로 가족 여행을 가는 친구였다.

친구는 아이들 때문에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가야 하는데 너무 비싸서 고민된다고 했다.

놀이동산이 거기서 거기지.

같은 마음이었기에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잘 다녀오자고 했다.

한 달 후, 친구를 만나 물었다.

저기, 유니버셜 어땠어?

피곤하다던 친구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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